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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6화, 우리가 보도록 하는 것들, Johannes Vermeer

3월 26 업데이트됨


15분 6화, 우리가 보도록 하는 것들, Johannes Vermeer

w. 고연정

Johannes Vermeer, 우유를 따르는 여인, ca. 1660,

캔버스에 유채, 41 x 45.5 cm, Rijksmuseum,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격자 틀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어두운 부엌에서, 한 여자가 우유를 따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일상적인 주제를 그린 회화를 풍속화라고 한다. 네덜란드 풍속화, 당장 얀 스테인의 풍속화를 떠올려봐도 일상적인 주제에 관련된 행동을 하는 인물들이 떠오른다. 익살스러운 표정을 한 집요하리 만치 자세하게 그려진 인물들 말이다. 그림을 보는 나에게 있어, 베르메르의 모델이 하는 행동은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윽고,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스스로 궁금해 졌다. 화가는 왜 이 주제를 이런 식으로 그린 것일까 ?

그의 회화를 보며 이런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델프트의 스핑크스라는 별명도 괜히 붙지는 않았겠지. 그의 회화에 흔히 붙은 수식어 들은, 미스터리하다, 신비롭다, 더 나아가 성스럽다는, 풍속화에 붙은 수식어 치고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표현들이다. 그런 수식어들에 비해 이 회화의 제목은 우유를 따르는 여인, 부엌의 하녀로 평범하기 이를 데가 없다.

베르메르의 풍속화들이 그렇듯 이 회화 역시 45.5 x 41 cm의 크기로, 대형 회화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를 연구한 미술사학자 다니엘 아라스는 회화의 크기는 그림이 전달하는 메세지와 그리고 이 회화가 그것을 보는 사람과 설정한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1] 즉, 보는 사람이 회화가 전하는 메시지, 즉, 주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회화의 크기가 결정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 여인이 우유를 따르고 있는 이 장소는 부엌으로 보인다. 즉, 단순히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집 안보다 더 안 쪽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 것으로도 모자라, 이렇게 우유 따르는 장면을 크게 확대한 것만 같은 구조는, 바로 눈 앞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유를 따르는 행위에서 우리의 시선은 묘하게 빗겨 나간다.

창문의 격자 틀에서 비롯되는 소실점은 벽에 걸려있는 양동이로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 이 시선은 양동이의 손잡이를 가린, 너무도 촘촘하게 짜여진 바구니에 잠시 묶인다. 여자의 뒷 부분에 있는 흰 회색의 벽도 그렇다. 벽에 듬성듬성 박혀 있는 못과 구멍들이 시선을 분산시켰다가, 다시 바닥에 정체모를 물건으로 시선을 옮긴다.

이윽고 전경에 배치된 선명하고 바로 손에 만져질 것 같은 파란 색 테이블보를 따라가면, 섬세하게 그려진 빵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우유를 따르고 있는 여인의 옷차림도 우리의 시선을 당긴다. 파란색 앞치마는 테이블 보와 같은 재질인 듯하다. 노란색 웃옷은 너무나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우유가 잘 따라지는 지 보려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인 고개를 따라, 그녀가 머리에 쓴 하얀색 두건의 밑 부분도 다소 젖혀진 듯하다. 그녀의 몸 자체도 테이블로 향해 있어, 보는 우리 쪽에서는 옆 면이 보인다. 즉, 이 회화의 주제인 우유 따르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 가장 가까이에 들어와 있는 우리지만, 정작 화면의 중심에 놓여진 그 행위 자체를 바로 보는 것은 오히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밖에 없고, 화가와 모델의 관계 속에 우리는 없다.

« 즉 그(베르메르)는 내밀성을 그 자체로 보여주면서 자신의 그림들에서 도상학적이거나 서사적인 부분을 줄여 나간다. 이처럼 그는 텍스트적 해독에 장애가 되는 회화, 즉 빛의 힘에 의해 밀도가 높아지고 불투명해진 모습으로 존재하면서 표면의 개척에 몰두하고 있는 회화가 솟아오르게 한다. »[2]

여기에서 우리는 화가가 풍속화를 구성하는 데 있어 이러한 ‘내밀성’을 섬세하게 구축하였는지에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풍속화가 그 시대의 상이 삶 속에 투영된 것을 담은 회화라고 한다면, 진부하리 만치 느껴지는 일상의 소재를 비껴가듯 재현한 것인가 ?

그 답을 바로 이 ‘내밀성’이 가져오는 효과에서 찾아본다면 이렇다.

다니엘 아라스는 이렇게 ‘불가해한 섬세함’ 속에서 구축된 관계가 내밀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화가는 이렇게 화면의 구성요소와 그들이 만드는 구도를 이용해 내적인 배치를 발전시켰는데, 이러한 배치를 오가는 관객의 시선이나 인식이 이 내밀성에 침투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우유따르는 장면과 같은 사적인 장면을 재현하면서, 관객이 오히려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을 제시하고, 동시에 그 ‘사적인 행위’ 가 이루어지는 공간과 시간을 보존한 것이다.[3]

물론, 여기에서 우리는 또다른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회화의 주제와 거리감을 두게 할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진 화면의 다른 구성 요소들 – 양동이, 바구니, 그리고 빵과 같은 테이블 위에 정물들 – 에 도상학 적으로 분석할 여지가 없는 것 인가 ? 화가는 아무 의도 없이 이러한 것들을 그렸다는 말인가 ?

다니엘 아라스는 이러한 구성 요소가 미술사가가 가진 직관의 유효성을 입증하려는 욕망이 드리운 함정이라고 말한다. 즉, 내가 보고자하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알고자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화면의 구성 요소에 도상학적 가치들을 투영하는 것이 아닌가 ? 그 예시로 그는 1967년 P. Bianconi가 자신의 저서에서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화폭 오른쪽 하단의 바닥에 놓여 있는 물체가 쥐덫이라 쓴 것을 든다. 다니엘 아라스는 이는 쥐덫이 아니라 발보온기이지만, 이 것이 무엇이고, 그 도상학적 가치가 무엇이냐 보다는, 이러한 디테일의 함정에 – 섬세한 표현의 함정에- 미술사가들이 어떻게 잡히는지에 대한 예시라 말한다. 쥐덫이라 규정한 사람은 왜 쥐덫인지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오류는 선행된 연구 – 문헌들로 뒷받침 된 해석 - 에서 쥐덫이라 규정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덧붙이며, 문헌을 앞세우는 것 보다, 이미지를 이미지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4]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하야 할 점에서 우리는 다시 이 회화의 장르로 돌아온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남부 지역, 지금의 벨기에인 그 곳은 카톨릭이, 북부 지역은 대부분 신교를 믿는 부유한 시민 계급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즉, 주요 예술감상자 층은 그들이었고, 그들의 취향이 곧 예술 시장의 취향이 되었다.[5]

« 그러니까 홀란드 예술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교회나 군주도 아니요 궁정사회도 아니었으며, 유별나게 부유한 몇몇 사람보다 웬만큼 부유한 사람이 많음으로 인해 그 중요성을 획득하게 된 시민계급이었다. »[6]

물론, 그들의 취향이 모두 같을 수는 없었기에, 교양계층 부르즈와지의 고전주의, 인문주의적 취향의 회화와 중류층의 시민적, 자연주의적 취향의 회화는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7] 17세기 네덜란드 예술시장의 독특한 특징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데, 화상들은 화가들에게 일명 ‘잘 팔리는 그림’을 요구하게 되고, 화가들을 바로 이 다양한 취향 속에 자신이 잘하는 것을 특화 시키기 시작한다. 아도르노는 이를 ‘기계적 분업’이라고 일컫는데, 즉, 회화의 특정한 구성 요소들, 예를 들면 정물화, 동물화 같은 것 만을 그리는 화가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8]

즉, 정물화를 디테일하게 그리는 것이 어떠한 문헌에서 뜻을 찾아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당시의 시대상황에 따라 더욱더 섬세하게 ‘잘’ 그리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해석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본다. 이제 정물은 정물로써 존재할 뿐이다.

회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회화의 구성요소를 하나하나 해석하고 왜 그것이 여기 놓여있는가 ? 이 구성요소 다른 구성요소, 특히 주제와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는가 ? 에 빠지게 된다. 왜 ? 는 중요한 질문이지만, 어떻게 ? 역시 중요하다. 이 '어떻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문헌들을 뒤지고 앞 시기, 동 시기의 비슷한 회화들을 찾아 그 맥락을 찾아내려고 하다 보면, 어떤 불확실성이 목에 걸리듯 불편해져 올 때가 있다. 나는 미술사가 역사와 연관된 학문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미술사가의 직관이, 역사를 앞설 수 있는가 ? 직관으로 역사를 해석하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유혹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이미지의 해석은 이미지 내부와 그 이미지를 만들어낸 화가, 그리고 그 화가를 만들어낸 사회에 있는 것이 아닐까 ?

마지막으로 회화의 역사에 대한 다니엘 아라스의 글을 남기며 이 칼럼을 마친다.

« 여기서 부각되는 것은 회화의 역사다. 그것은 무덤에서 나온 용어 체계와 분류로서의 역사, 죽은 자들에게 지어준 기념물로서 역사가 아니라, 축적된 미완성의 연속적 지각들 속에서 존재하며 회화 작품들이 이 지각들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에 회화가 그 대상이 되는 역사 속의 회화의 역사다. 그림 속에서 무엇인가 기호를 이루고 보는 사람에게 접근하라고 부르며 회화의 내밀성을 세분화시키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순간들에, 서로서로 맺어지는 지각들. » .[9]

[1] 다니엘 아라스 저, 이윤영 역, 디테일 – 가까이에서 본 미술사를 위하여, 도서출판 숲, 2007, p. 323 - 324.

[2] 같은 책, p. 328.

[3] 같은 책, p. 324.

[4] 같은 책, p. 422 - 436.

[5] 아르놀트 하우저 저, 백낙청, 이윤영 역,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 르네쌍스, 매너리즘, 바로끄, 창작과 비평사, 1999, p. 279 – 284.

[6] 같은 책, p. 283.

[7] 물론 서서히 귀족주의적 예술관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같은 책, p. 286.

[8] 같은 책, p. 288 – 292.

[9] 위의 책, p. 446.

이미지 출처 :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la-laiti%C3%A8re/9AHrwZ3Av6Zhjg?hl=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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