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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ehyun LEE

신제국주의 시대 박람회와 인간 전시 -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장(場)

4월 7 업데이트됨


신제국주의 시대 박람회와 인간 전시

-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장(場)

Jehyun LEE 이제현

19세기 초 노예무역의 폐지, 산업혁명으로 인한 빈부격차의 심화 등의 이유로 경제적 위기를 맞이한 유럽의 열강들은 이를 타개하고자 아프리카 대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땅에서와 마찬가지로 한정된 아프리카의 자원을 앞 다투어 차지하려는 유럽 국가들의 경쟁은 전쟁 직전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고 자칫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있는 이러한 과열구도를 진정시키고자 독일의 수상이었던 비스마르크는 1884년 베를린 회의를 개최한다. 독일, 영국, 프랑스를 포함한 열 네개 국가가 참여한 이 회의에서 서구 세력들은 단 한 아프리카 국가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아프리카 대륙을 분할하여 식민지화 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시작된 ‘신제국주의 시대’를 주도해 나간 유럽의 국가들은 아프리카의 영토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땅에서 나고 자란 수많은 민족과 그들의 역사 그리고 문화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데 집중하였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배의 주체였던 유럽의 ‘백인’들은 아프리카를 구성하고 있는 상당수의 ‘흑인’들과의 인종적 위계를 설정하고, 백인들의 지배로 하여금 이들이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문명의 발전을 이룩해야함을 주장하였다. 19세기 후반부터 서구 각지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다수의 ‘박람회’는 대중을 위한 예술, 문화, 오락 공간을 표방하였지만 기저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유럽 각국의 폭력적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그 필요성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강한 목적의식 아래 개최되었다.

자국에서 진행되는 박람회가 흥행면에 있어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식민지배국가들은 더욱 더 다양하고 많은 아프리카의 문화재들로 박람회 공간을 채우고자 하였으며, 이때 각각의 오브제에 대한 이해나 연구는 전혀 수반되지 않고 이들은 뒤섞인 채로 방치 및 전시되었다. 뿐만 아니라 박람회 내에서는 하나의 전시 소재로써 아프리카 촌락이 그대로 재현되기도 하였는데 그 안에는 수당을 지급 받은 아프리카인들이 현지 생활상을 묘사 및 연기하며 관람객의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나무를 타고 바나나를 따는 연기자의 모습은 이들 백인들에게 한 마리 원숭이의 모습과 다름 없었고, 이렇게 박람회를 찾는 수많은 대중들은 기획주체의 의도대로 아프리카인들은 ‘원시적’이며 ‘미개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1] 1894년 리옹 식민지 박람회 내에 재현된 아프리카 촌락

[2] 1905년 리에쥬 만국박람회 내에 재현된 세네갈 촌락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서구를 관통한 신제국주의 흐름은 빠른 속도로 아시아 대륙으로 전이되었고, 일본은 당대의 유일한 아시아 식민지배국가로서 다른 국가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였다. 일본 정부는 다수의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그들의 식민지배 제도를 답습하였고, 이때 박람회는 서구의 열강들에게 당시 일본의 경제적,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동시에 일본의 아시아 대륙 지배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를 얻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일본은 여러 차례의 박람회를 통해 메이지 시대로부터 이어진 서구화 된 일본을 드높이는 반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예술과 문화를 평가 절하하고 일본인이 아닌 아시아인들의 모습을 희화함으로써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 예로 열도 내에서 개최한 1903년 제5회 내국권업박람회와 1907년 도쿄권업박람회 그리고1910년 영국에서의 일영 박람회에서 일본은 이미 자신의 식민지배 아래에 있던 대만인들과 보호국의 상태이지만 곧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올 조선의 남녀를 재현된 전시 공간 속에 배치함으로써 이들을 객체화시키고, 나아가 대중의 더 큰 관심과 흥행을 이끌어 낼 유흥의 요소로 이용하였다.

[3] 1903년 제5회 내국권업박람회에 전시된 아시아인들과 두 조선인 여성

이처럼 계층에 상관없이 최대한 많은 대중들이 동등하게 예술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포장된 박람회는 신제국주의라는 정치적 맥락 속에서 오히려 인종과 인종, 국가와 국가 간의 위계를 설정하고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써 탄생 및 작용하였다. 우리가 매체를 통해 흔히 듣고, 알고 있는 몇몇의 만국박람회들 또한 식민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초기 박람회들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으며, 이러한 제도 혹은 장(場)의 숨겨진 이면을 밝혀내는 것이 미술사학 뿐만 아닌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등의 학문이 가진 하나의 역할이 아닐까.

[1] https://gallica.bnf.fr/ark:/12148/btv1b7702295c/f1.item

[2] https://lejournal.cnrs.fr/articles/a-lepoque-des-zoos-humains

[3] 권혁희, 일본 박람회의 ‘조선인 전시’에 관한 연구 – 1903년 제5회 내국권업박람회와 1907년 도쿄권업박람회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6, 38쪽.

참고 문헌

김명주, 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 말라, 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12.

권혁희, 일본 박람회의 ‘조선인 전시’에 관한 연구 – 1903년 제5회 내국권업박람회와 1907년 도쿄권업박람회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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