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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츠구하루 후지타, 1920년대 « 파리에서 가장 알려졌으며, 가장 사랑 받았고 가장 유명했던 화가 ». 왜 ?

4월 7 업데이트됨


참고이미지 1. 후지타 전시 팜플렛

츠구하루 후지타, 1920년대 « 파리에서 가장 알려졌으며, 가장 사랑 받았고 가장 유명했던 화가 ». 왜 ?

Zinna KIM 김진

지난 3월 7일부터 7월 15일까지 파리 7구에 위치한 마이욜 미술관(Musée Maillol)에서 일본출신 프랑스 화가 츠구하루 후지타(Tsugouharu Foujita)의 특별전이 있었다. 1913년부터 1931년 사이 제작된 백 여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후지타의 첫 번째 파리 체류 동안의 기간을 총망라하며(그는 세계대전으로 인해 파리를 떠났다가 미국, 남미, 일본 등에서 체류하다 다시 1950년 파리로 돌아와 시민권을 획득하고 정착하여 거주하다 1961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한다), 이 기간은 그의 가장 활발한 작품 제작 시기로 그의 특징적 작품세계를 충분히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전시로 평가할 수 있겠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화가 후지타는, 미술 비평가 앙드레 바르노(André Warnod , 1885-1960)에 의하면, 1920년대 « 파리에서 가장 알려졌으며, 가장 사랑 받았고 가장 유명했던 화가 »였다. 그는 어떻게 스스로를 그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었을까 ? 한국의 아티스트라 하면 플럭서스의 백남준 정도 겨우 미술사학자들과 미술애호가 사이에서 알려진 정도지만, 일본은 그림, 조각, 패션에 할 것 없이 프랑스에 알려진 아티스트가 많다. 현재 루브르 유리피라미드 안에 임시로 설치된 금빛 대형오브제(참고이미지 2)의 경우도 일본 아티스트의 작품이다. 이번 후지타의 전시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또 ! 일본 아티스트구나. 어떤 작품일까 ?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참고이미지 2. 루브르 유리피라미드 안에 설치된 일본 아티스트 코헤이 나와(Kohei Nawa)의 작품, «왕좌 Throne»

참고이미지 3. 1926년의 후지타(Mme D.ORA가 찍은 사진)

프랑스 미술사에서 19세기부터 등장하는 자포니즘(japonisme : 19세기 중-후반 유럽에서 유행하던 일본풍의 사조)이라는 단어에서 부터 알 수 있지만 프랑스는 일본을 좋아한다. 1886년 도쿄출생으로 현 도쿄 예술대학의 전신인 도쿄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한 후지타는 1913년 파리로 유학했다. 20세기 초 파리예술계에 흔치 않았던 아시아계 아티스트로 시작부터 주목을 받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을까 싶다. 한편 그의 유학시기를 당시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상황에서 보자면, 1910년 강제 합병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식민지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혼란의 시기라는 점에서, 일본 육군 군의총감의 자리에까지 오른 군의관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파리유학을 단행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씁쓸한 인상을 받았음을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어쨌든 혼란의 시기에 그는 프랑스 유학을 감행하고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유명세를 쌓아야 할 절실함을 곧 깨닫는다. 파리로 모여든 손꼽을 수 없이 많은 세계 각지의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져야만 작품을 내보일 수 있고 이는 판매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에 후지타는 자신의 외모를 좀 더 시선을 끌게 만들고 작품 또한 동양적 화풍과 유화를 결합시켜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차별성을 가졌음을 내세우기 시작한다. 그는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수염, 안경, 의상 등으로 치장하고 « 사진 »을 이용하여 자신을 알리려 노력한다. 그는 화가이면서 포토그래퍼였다. 사진이라는 매체로 소위 스스로의 « 스타성 » 개발에 몰두한 것이다. 어쨌거나 결과는 성공적이다. 이번 전시 팜플렛의 문구에 따르면, 그는 그의 삶에 2가지 열정이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는데 바로 « 그림 painting »과 « 파리 Paris »이다. 이미 프랑스에선 일본문화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가 형성되어 있는데 동양아티스트가 흔치 않았던 시절 일본 출신의 화가가 파리로 유학와서 자신의 열정은 그림과 파리라고 하니 어찌 호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

아티스트로서 그의 외모 가꾸기는 위 사진에서 설명이 단번에 됐을 것 같다. 그럼 이제 작품을 보자.

참고이미지 4. 화가의 자화상 Portrait de l’artiste, 1928, 캔버스에 유화물감과 과슈 혼합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과 과슈를 섞어 그린 자화상이다. 동그란 안경테와 동그란 귀걸이를 한 아티스트가 고양이를 안고 있다. 동양의 수묵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오묘한 분위기와 기법은 당대 미술계의 호기심을 이끌어 내기에 적합했으리라 추측이 된다. 그는 기법 뿐만 아니라 작품의 소재에서도 신중을 기했다. 그는 여성, 고양이, 정물화, 아이들과 자화상을 주로 그리며 동양과 서양의 테마적 결합 뿐만 아니라 재료와 분위기 또한 섞어내었다. 일본식 뿌리와 서양식 클라시즘의 결합이었다. 영리한 아티스트다. 현대의 아티스트들도 스스로의 스타성 개발에 몰두하는 것도 사실이다. 후지타는 백 여년전 이 중요성을 벌써 깨닫고 실행하여 성공한 초기의 아티스트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그는 모딜리아니 등 당대 유명화가들과 교류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결합하여 착실히 진로를 개발해 나갔다.

참고이미지 5. 작은 붓다 Le petit Bouddha, 1919, 캔버스에 유화

참고이미지 6. 교양있는 개들 Chiens savants, 1922, 캔버스에 유화

그의 작품들은 동양적이면서 서양적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양적 테마를 서양적 기법과 재료로 풀어내었다. 선은 굉장히 얇고 섬세했으며 색감은 수묵담채화처럼 옅고 은은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화의 색감이 아니라 볼 수 있다. 분명 차별성이 있었으며 작품들은 매력적이었다. 후지타는 영리했던 아티스트였고 전략이 있었으며 성공했다.

참고이미지 7. 촬영중인 일본 tv

전시가 끝나는 막바지 7월 12일에 나는 방문했는데 일본방송에서도 촬영을 나왔다. 일본 여배우 인듯한 게스트가 미술평론가에게 설명을 들으며 전시를 같이 보는 컨셉이었다. 개인 아티스트나 국가/사회적 차원에서의 전략과 지원의 필요성이 다시 한번 느껴진다. 한국의 아티스트들 또한 영리한 활동을 할 수 있길 바라며 국가적인 관심 또한 기울여 주길 바라는 바람이다.

참고이미지 8.

이미지출처

참고이미지 1. 마이욜미술관 공식 사이트(https://www.museemaillol.com/)

참고이미지 2, 4, 5, 6, 7, 8. 직접 촬영

참고이미지 3. Mme D.ORA 포토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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