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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모더니티의 선구자 - 마네


모더니티의 선구자 - 마네

Zinna KIM 김진

19세기 중반 프랑스 회화에 대대적 전환을 불러일으킨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등장은 피에르 보르디유 Pierre Bourdieu[1]의 평가처럼 가히 혁명적이라 평가될 수 있다. “풀밭 위의 점심(1862)”과 “올랭피아(1863)”로 대표되는 마네는 회화사에서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기에 미술사학자들은 그를 “모더니스트”라 부르며 근현대회화의 “선구자”로 지칭하는 것인가?

풀밭 위의 점심(1862), 캔버스 위에 유화채색, 파리 오르세 미술관

19세기 프랑스 회화는 주로 고전양식인 “아카데미즘”이 지속되는 동시에 새로운 회화사조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복합적 공존의 형태로 요약될 수 있다. 19세기 초반에는 다비드나 앵그르, 들라크루아처럼 아카데믹한 화가들이 프랑스 화풍을 휩쓰는 경향을 보였으나 “보이는 것만 그린다”는 신념으로 유명한 쿠르베가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신념에 따른 작품을 제작하며 “사실주의”를 선언함으로써(Le Manifeste du réalisme, 1855) 국가가 예술의 시작과 끝까지를 관여하는 아카데미즘의 쇠퇴를 본격적으로 앞당기는 계기를 완성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아카데미즘이란, 국가가 예술의 전반적인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당시 프랑스식 예술시스템으로 그림의 주제나 테크닉, 제작, 구매, 유통과정 등 모든 것이 국가의 통제 하에 운영되는 것을 말한다. 신화나 성경, 역사를 상상으로 그려내고, 색깔보다는 구도와 스케치를 중요시 하였으며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본 뜬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자연을 모방하여 실내작업을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사회주의자이자 공화주의자였던 쿠르베는 상상보다 현실을 작가의 신념대로 담아 내야 한다는 주장으로 민중이나 노동자계급의 인물 또는 삶을 그림으로써 당대 비평가들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으나 이는 회화사에 대대적 전환을 가져온 계기로 곧이어 마네의 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쿠르베가 민중과 노동자계급의 삶에 더 집중한 사회주의적 화가였다면 마네는 프랑스 혁명 후 변화되어가는 당대 사회의 “현대성”을 담아 현실적으로 그려낸 모더니스트로 평가된다. 마네는 “나는 내가 보는 것을 그린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좋아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는 “전체”를 그리기보다 일상에서 포착된 어떤 순간의 부분을 자신이 받은 감정, 느낌, 인상을 자신의 방식을 적용하여 그려내었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1881-182), 캔버스에 유채, 코톨드 미술관

그는 당대 사회가 가지고 있던 진실을 드러내고 살아있는 현장감을 전달한다. 이에 대해 프랑스 시인이지 번역가이며 비평가인 스테판 말라르메 Stéphane Mallarmé는 1876년 저서 “인상주의자들과 마네”에서 그의 1876년 전시회에 대해 언급하며 그를 “아카데미즘과 타협하지 않고 직관과 감정에 따르는 화가”로 인정하였다. 직관에 따르는 그림이란, 각자 가지고 있는 기존의 기억을 따라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눈앞에 지금 포착된 풍경이나 사물이 주는 직관 그대로를 그림에 담아내는 것을 말한다. 작가의 개인적 감정과 취향, 자율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작가가 보는 방식에 따른 주제의 집중선택이 관여하며, 마네는 전체적인 조화로운 풍경보다는 말하고자 하는 어떤 부분을 포착하여 집중선택으로 담아내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 보면 종종 부분적으로 잘린 인물이나 배경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로 아래 작품 “나나”를 보면, 모자를 쓴 신사가 반쯤은 잘려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나나(1877), 캔버스에 유채. 함부르크 미술관

모더니스트로 평가되는 그가 그리는 “모더니티”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익숙한 올랭피아를 보자.

올랭피아(1863), 캔버스 위에 유화채색, 파리 오르세 미술관

고야의 “옷 벗은 마야(1795-1800)”나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이 떠오르기도 하는 이 작품은 그야말로 당대의 대단한 화젯거리였다. 아카데미즘이 허락하였던 전통적 양식의 누드가 아니라 대중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의 충격적 누드였던 것이다. 당대까진 사실, 누드란 예술적 그림 등에서 아카데미즘의 철저한 규율 속에서 여신 또는 상상의 인물로서만 표현되었던 주제였으나 마네는 당시의 실존인물인 화류계 여성 빅토린 Victorine을 모델로 그림으로써 현실의 누드를 그림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이는 대중이 보는 최초의 ‘사실적’ 누드라고 해도 무방한 대단한 파격이었다. 물론, 이러한 센세이션은 즉시 당시 부르주아 계급이나 일반 시민들에게서도 큰 인기를 끌어 마네의 전시를 보러가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아주 “핫”한 나들이가 되었다고 한다.

이 올랭피아 작품에 대해 말 라르메는 “작품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으며 쇼킹하고 엉뚱하면서도 참신하다”고 하였으며, 마네가 표현하는 것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당대의 현실이며 투쟁이며 이는 혁명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하였다. 현대 사회의 부정할 수 없는 정신적 폐악을 드러냈다고 평가한 그는 “이러한 과도기적 시대에 대해 본인은 어떠한 유감도 가지지 않으며 마네는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내었다”고 극찬하였다.

마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제는 화류계 여성이나 일반 대중이며, 그들의 문화이며 직업적 삶이다. 그는 사실을 드러내는 평범하고 속된 것, 아름답지 않은 것도 그린다. 1875년 제작된 작품 “빨래”를 보면 젊은 여성이 야외에서 어린 아기 한 명과 빨래를 널고 있는 장면이다. 이 작품은 1876년 살롱전에 출품하였으나 거절되었지만 우리는 이 작품에서 인상주의적 기법의 태동을 엿볼 수 있다. 주제에 있어서 아카데미즘에서는 고려할 가치가 전혀 없는 일상의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그림이 주는 신선함은 인상주의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게된다. 마네 자신은 “인상주의자”가 아니라고 부정하였지만, 정원의 꽃들과 화사하게 쏟아지는 빛의 느낌이 충만하게 표현된 이 작품은 “빛”과 “인상”에 집중하는 인상주의자들에게 큰 영감을 준 것이 틀림없다.

빨래(1876), 캔버스에 유화, 필라델피아 반스 재단

이렇듯 마네는 현대성의 문을 연 모더니티 회회의 선구자로 평가될 수 있다. 같은 시대 프랑스 시인이자 비평가인 보들레르Baudelaire는 모더니티를 “과도기적인 것이며 순간적인 것, 우발적인 것이지만 그 안에서 영원성을 담아내는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결국 없어질 것이지만 예술가들은 이를 포착하여 예술로 결과물을 만들고 이는 영원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당대의 모더니스트들이 남기고자 했던 “당대의 현실”은 지금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이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가치로 자리잡는다.

이미지출처;

https://www.somersethouse.org.uk/sites/default/files/styles/header_image_landing/public/%C3%89douard%20Manet%2C%20A%20Bar%20at%20the%20Folies-Berg%C3%A8re.jpg?itok=ozX3-YzD

https://fr.wikipedia.org/wiki/Le_Linge#/media/File:Edouard_Manet_087.jpg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d/Edouard_Manet_037.jpg/1200px-Edouard_Manet_037.jpg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olympia/ywFEI4rxgCSO1Q?hl=fr&ms=%7B%22x%22%3A0.5%2C%22y%22%3A0.5%2C%22z%22%3A9.62610103896778%2C%22size%22%3A%7B%22width%22%3A1.6791224649069896%2C%22height%22%3A1.2375000000000007%7D%7D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luncheon-on-the-grass/twELHYoc3ID_VA?hl=fr&ms=%7B%22x%22%3A0.5%2C%22y%22%3A0.5%2C%22z%22%3A9.484166637536505%2C%22size%22%3A%7B%22width%22%3A1.9279231325205894%2C%22height%22%3A1.2374999999999996%7D%7D

[1] 20세기 중후반 프랑스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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