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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15분 2화, 일요일의 편지 (Courrier de Dimanche)

최종 수정일: 2020년 4월 7일


15분 2화, 일요일의 편지 (Courrier de Dimanche)

고연정 Yeon-Jeong Danielle GO

Chef de Projet

저번 시간에 봤던 오딜롱 르동의 작품이 아직 여러분의 머리에 남아있는지 모르겠네요. 안녕하세요, 15분 두번째 시간에는 작가를 알려드리기에 앞서 작품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65x54cm의 화면을 가득 메울 정도로 그려진 여성의 상반신 나체입니다. 칠흑같은 바다에서 막 튀어 나온듯 여성의 옆구리와 배 쪽의 물방울이 거품을 이루며 하얀 알갱이들로 부서지고 있네요. 여기에서 어렴풋이 많은 작가들이 그렸던 비너스, 그리고 그녀의 탄생을 떠올리는 분도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아름다움, 사랑, 그리고 성의 여신으로 알려진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는 로마 신화에서는 베누스, 영어로는 비너스라 불려집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있다 시피, 아들 크로노스에 의해 잘리고 바다에 던져진 우라노스의 남근이 일으킨 그 거품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진 아프로디테. 심지어 이름도 아프로는 거품에서 태어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알렉상드르 카바넬, 비너스의 탄생, 1863

천에 유채, 130x22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그래서 우리가 비너스의 탄생에 관한 작품들을 접할 때, 바다 혹은 하얀 거품을 볼 수 있는 것이죠. 다시 우리의 그림으로 돌아와서, 이 파도 속의 여인이 비너스인지 생각해 봅니다.

비너스라고 하기에는 우리가 앞서 봤던 ‘전통적인’ 비너스에 비해 너무나 현실적인 부분들이 보이는 군요.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다는 기준을 떠나서 말입니다. 여인의 겨드랑이 탈의 묘사, 정리되지 않은 머리, 균일하지 않은 피부톤 등은 우리가 이제까지 보아왔던 여신의 완벽한 외관보다 인간의 사실적인 반 누드로 보입니다.

이러한 사실적인 묘사를 보고 미술사가 다니엘 아라스는 자신의 저서 디테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상체만 분리된 이 ‘파도 속의 여인’은 기념비적이며 리얼리즘적인 알레고리이자 바다에서 솟아나온 ‘비너스의 탄생’인데, 쿠르베는 이 바다 깊숙한 곳에 자신의 이름을 남겨놓았다. »

네, 바로 이 생동감이 요동치는 사실주의 비너스의 탄생 이라고 까지 불리는 이 작품의 작가가, 여러분이 오르세 미술관에 가면 꼭 보고오는 바로 그 작품, 세상의 기원을 그린, 구스타브 쿠르베 인 것입니다.

구스타브 쿠르베, 파도 속의 여인, 1868년

천에 유채, 65x54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사실주의, 우리는 실제와 같은 작품을 보고 리얼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정말 실제와 구분하기 힘든 작품은 하이퍼 리얼리즘에 속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리얼리즘의 창시자, 쿠르베에게 있어 ‘사실’ 이란 무엇을 의미했던 것일까요 ? 그저 실제를 똑같이 그려내는 것에 불과했을까요 ? 그렇다면 사진과 리얼리즘 회화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

여기에서 우리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 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생각의 시작은 당시의 사람들과 같은 지점일 필요가 있죠. 당시 프랑스의 비평가들은 자연의 모방보다는 실제의 분석에서 예술의 본질을 찾습니다. 그 분석이 얼마나 집요했던지, 혹자는 예술과의 열정과 개성이 수소와 산소처럼 취급되기 시작했다며, 예술가가 화학자로 변형되는 것만 같다고 말할 정도였죠.

19세기 중엽, 1850년대 샹플뢰리는 상상력은 실수와 허위의 여왕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샹프뢰리가 말하는 상상력이란, 실재와 실재 사이에 생긴 기억의 부재를 메꾸는 허위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즉,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지해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죠. 이러한 허구의 그림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결국 무엇일까요, 불완전한 기억과 상상력 의지한 허상의 미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 존재하는 여성의 실제의 몸에서 얻어지는 미가 아닌 자신의 머리에서 기억하고 또 거기에 덧붙여진, 이 허상의 누드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이 있을까요 ?

구스타브 쿠르베, 세상의 기원, 1866

천에 유채, 46x5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쿠르베는 사실주의에 과한 자신의 주요한 이론적 선언들을 담아 1861년에 출간한 일요일의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회화는 하나의 구체적인 예술이므로 실재적 사물만을 나타낼 수 있고 그 영역에는 추상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볼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추상 회화는 예술이 아닌가요 ? 저는 개인적으로 사실주의에 관한 이론을 추상 회화에 적용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로, 사실주의는 실재하는 것을 그려내는 회화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죠. 두번째로, 추상 회화에서 사용하는 ‘추상’이 의미하는 바는 실재에 대한 사고와 분석이지 그저 상상하는 것에 그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폴 보드리, 진주와 파도, 1862년

천에 유채, 83x175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쿠르베는 반대 입장에 있었던 폴 보드리의 1862년작 진주의 파도를 봅시다. 이 작품은 1863년 살롱전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매우 환상적인 색채로, 여성은 마치 보석처럼 누워있으며, 그녀의 피부는 진주처럼 새하얗고 만지지 않아도 대리석처럼 매끈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잘 정돈된 머리카락과 작가가 생각하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에는 있어야할 털과 근육마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앞서봤던 카바넬의 여신의 육체, 비너스를 떠올리게 하네요. 쿠르베의 파도 속의 여인을 생각하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3

천에 유채, 208x264,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63년은 마네의 목욕, 즉 풀밭 위의 점심식사의 스캔들이 있었던 낙선전이 열렸던 해이기도 합니다. 바로 여자의 누드로 화가들이 가지고 있던 회화에 대한 생각을 대결하던 해였다는 말이죠.

사실 쿠르베의 회화에는 도덕적인 의도가 숨어있다고 합니다. 여성의 나체가 만들어내는 춘화에 가까울 정도로의 적나라한 포즈와 실재와 같은 묘사는 매우 도발적입니다. 그리고 그 것을 보는 관객들은 충동적인 사고를 한 번쯤은 하게되고 그 와 동시에 도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쿠르베는 포르노와 같은 작품의 이면에 도덕적인 의도를 숨겨놓습니다. 이러한 효과는 쿠르베가 주장하는 리얼리즘에 가까울 수록 더 효과적이죠.

구스타브 쿠르베, 게으름과 사치 (혹은 « »), 1866년

천에 유채, 135x200cm, 파리, 프티 팔레 미술관.

실재하는 것을 그려내는 회화에 추상의 영역이 포함되는 것을 격렬히 거부하는 방어적이고, 상당히 공격적이라고 까지 볼 수 있는 자세, 그 것이 바로 쿠르베는 추구했던 사실주의가 아니었을까요 ?

이미지 출처

오르세 미술관 http://www.musee-orsay.fr/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https://www.metmuseum.org/

프라도 미술관 https://www.museodelprado.es/en

프티 팔레 미술관 http://www.petitpalais.paris.fr/

참고서적

Daniel Arasse, Le Détail, pour une histoire rapprochée de la peinture, Flammarion, Paris, 1996.

Daniel Arasse, Histoires de peintures, Gallimard, Paris, 2006.

Wladyslaw Tatarkiewicz, A History of six ideas : An essay in Aesthetics, PWN-Polish Scientific Publishers, Warsaw,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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