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gina Hyunjoo SONG
[국문] 유동하는 세계 – 2017년 리옹 비엔날레
최종 수정일: 2020년 4월 7일
유동하는 세계 – 2017년 리옹 비엔날레
송현주Regina Hyunjoo SONG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 (Zygmunt Bauman)은 액체라는 키워드로 ‘근대’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와 제도의 형태들은 그 모습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모든 상황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근대의 특징은 견고한 제도의 고형적인 국면이 점차 유동하는 액체성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2017년 리옹 비엔날레의 주제이기도 한 ‘Moderne’이라는 키워드를 단순히 ‘근대’라고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19세기 중엽을 나타내는 의미로 쓸 때는 근대라고 볼 수 있지만, 형용사로서의 ‘Moderne’을 떠올리면 현대라는 뜻이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1991년부터 리옹 비엔날레의 전시 총감독인 티에르 라스파일(Thierry Raspail)은 초대 큐레이터들에게 ‘Moderne’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제시했다. 퐁피두 메츠 센터의 관장이자 리옹 비엔날레 ‘Moderne’의 두 번째 시리즈를 감독한 초대 큐레이터 엠마 라빈(Emma Lavigne)은 바우만의 액체 근대에서 영감을 얻어‘Moderne’의 의미를 재해석하였다.
비엔날레의 타이틀 ‘유동하는 세계’(Monde Flottants)는 엠마 라빈의 기획을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비엔날레의 대표 타이포 그래피에서 모든 ‘O’자를 구불거리는 선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물에 대한 이미지는 직접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미지1) 사실 전시 포스터를 봤을 때, ‘Moderne’이라는 주제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전반적인 기획이 물을 강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리옹의 중심지인 벨쿠르 광장에 놓인 셀레스트 부르시에 무주노(Céleste Boursier Mougenot)의 작품 Clinamen V3 (이미지2)는 이글루 같은 돔 안에 하얀색 그릇들을 띄워 서로 부딪치며 소리가 돔 안에 울려 퍼지게끔 설치되었는데, 이번 비엔날레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나타낸다.


- (이미지1) Monde Flottants 포스터


- (이미지2) (이미지2_2) 셀레스트 부르시에 무주노(Céleste Boursier Mougenot)의 Clinamen V3
그릇들은 물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딪치며 하모니를 자아낸다. 셀레스트 부르시에 무주노는 실험 음악과 조형예술의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해온 작가로서,우연적인 소리와 시각적 미감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한다.
셀레스트 부르시에 무주노의 Clinamen V3 작품은 언뜻 1960년대의 설치 미술과 플럭서스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이 생각은 비엔날레의 주요 전시 장소인 리옹 현대 미술관(Le Musée d’Art Contemporain de Lyon)과 슈크리에(La Sucrière)에서도 이어졌다. 리옹 현대 미술관의 첫 번째 전시실에는 마르셀 뒤샹의 드로잉과 데이비드 튜도르(David Tudor)의 Rainforest V (이미지 3), 유코 모리(Yuko Mohri) (이미지 4)의 작품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미지3) 마르셀 뒤샹의 드로잉 / -(이미지4) 데이비드 튜도르(David Tudor)의 Rainforest V
이어지는 두 번째 전시실에는 관람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리바니 노이원슈원(Rivane Neuenschwander)의 Repente가 있다. (이미지 5) 브라질 작가 노이언슈원의 작품은 ‘과정의 미술’로 관객의 참여가 필수적인 작품이다. 각각의 부직포에 서로 다른 단어들이 적혀 있는데, 관객들은 그 부직포를 전시장에 마련된 큰 판에 붙일 수도, 자신의 옷에 붙일 수도 있다.

-(이미지5) 리바니 노이원슈원(Rivane Neuenschwander)의 Repente
1960년대부터 현대 미술 영역 안에 등장한 설치 미술은 1900년대 초반 마르셀 뒤샹과 프레릭 키슬러의 계보를 이어, 관람객과 작품, 작품이 놓인 장소라는 세 가지 요소의 상호 관계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전시의 형태는 탈중심적인 디스플레이와 관람객의 동선 고려와 같은 오늘날 전시 매뉴얼이라고 불리는 현대 미술 전시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다. 2017년 리옹 비엔날레에서도 이 형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제각기 다른 장소에서 비엔날레를 진행하지만, 장소마다 현대 미술의 출발점을 비슷하게 설정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미지6)
리옹 현대 미술관 엘리베이터에서는Ari Benjamin Meyers의 Elevator Music을 설치하여 일상에서의 예술에 초점을 둔다.
옛 설탕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손 강 옆의 슈크리에(La Sucrière)는 구조적으로 짜인 현대 미술관보다 좀 더 실험적인 전시 형태를 갖췄다. 그 중에서도Doug Aitken의 Sonic Fountain 2는 우리나라 전래동화 속 산신령이 살 것 같은 옹달샘을 떠올리게 하는 설치 작품이다. 슈크리에에는 돌, 비닐, 타이어, 바람에 부는 프로펠러와 같은 재료적 특성이 눈에 띄는 개념 미술 작품이 대부분이었고, 전시장 중앙에는 한스 하케(Hans Haacke)의 Wide White Flow가 바람에 펄럭이며 물결 형상을 자아낸다.

-(이미지7) Doug Aitken의 Sonic Fountain 2

-(이미지8) 한스 하케(Hans Haacke)의 Wide White Flow
2017년 리옹 비엔날레는 전반적으로 바우만의 액체성의 메타포를 물이라는 소재로 쓴 것이 참신하였지만, 그와 비교해 전시 형태가 너무 일반적이었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Moderne’이라는 키워드가 단순히 바우만과 보들레르의 근대성 이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동하는 세계보다는 유동하는 시대나 인간에게 초점을 맞췄다면 기획과 작품의 방향이 더 풍부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참고 문헌:
양효실, “보들레르와 근대 : ‘1846 미술 비평’을 중심으로”, 한국미학회지, Volume 33, 2002년 11월, pp. 199~241.
조정빈, ‘유동하는 현대, 그 위를 부유하는 현대인’, 칼럼(대학신문)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825
신지은, ‘액체근대의 지옥 속에서 유토피아를 살아내기’, 로컬리티 인문학, 2011, pp. 343~352.
Anael Piaget, ‘Lyon, 14e Biennale d’art contemporain: les Mondes flottants’, 2017, Artpress.
https://www.artpress.com/2017/10/03/lyon-14e-bienna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