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gina Hyunjoo SONG
[국문] 첨단 기술과 오페라의 만남 –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최종 수정일: 2020년 4월 7일
첨단 기술과 오페라의 만남 –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송현주 Regina Hyunjoo SONG
텔레비전 방송에서 가수의 무대를 보며 ‘저걸 직접 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연극, 무용, 뮤지컬, 오페라 등과 같은 공연 예술의 묘미는 단연 현장에서 직접 분위기를 느끼면서 보는 것이다. 한편, 첨단 기술의 발달은 매체(媒體, Media)의 시대를 열어주었다. 집에서 그야말로 클릭 한 방이면 뉴욕 카네기 홀의 콘서트를 실시간으로 감상하게 해주는 기술의 발전에 맞춰, 매체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도판1)
<메트 오페라 – 카르멘 포스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은 2006년부터 시즌별로 공연되는 오페라를 최고해상도 스크린으로 옮겨와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고선명 라이브(Metropolitan Opera Live in HD, The Met: Live in HD)라는 이름으로 위성을 통해 고선명 비디오를 찍어 전 세계의 영화관에서 상영될 수 있도록 하였다.
매체 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이론에 따르면, 현대의 예술 작품의 가치는 심미적 대상인 동시에 즐김의 대상이 된다.[1] 벤야민은 예술 작품의 가치를 작품 자체에 두기보다, 이를 수용하는 인간에게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첨단 기술 시대의 예술 작품은 매체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지각 작용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필자는 발터 벤야민의 이론에 대한 생각을 <메트 오페라 – 카르멘>의 개인적 감상을 통해 좀 더 자세히 풀어보고자 한다. 우선, 오페라는 ‘음악에 의한 극(drama per musica)으로서, 음악의 요소, 대사, 미술의 요소 (무대 장치, 의상), 연극의 요소 (연기), 무용의 요소가 한꺼번에 결합하는 종합 예술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이 각각의 요소가 어우러지는 것을 보는 것이 오페라의 매력 중 하나이다. 이러한 감상 방법을 벤야민의 전제로 본다면, 오페라에서는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실생활에서 ‘아우라’는 분위기를 나타내는 의미로 쓰이지만, 이와 다르게 벤야민이 말하고자 하는 아우라는 예술 작품이 가지는 객관적 특성과 그에 대한 감상자의 경험을 나타낸다. 벤야민이 말하는 예술 작품의 아우라는 시간과 공간이 일회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예술 작품의 진품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중들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 작품의 가치를 통해 아우라를 느낀다. 아우라는 즉 수용 태도이고, 그에 따르면 기술의 발전 속에서 변화한 예술의 형태에서 이러한 아우라는 경험되지 않는다. 그는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유일무이했던 기존의 예술 작품의 가치와는 다른 수용 형태를 가져오리라 예측하였다
“예술 작품의 복제 기술은 복제품을 대량 생산함으로써 일회적 산물을 대량 제조된 산물로 대체시킨다. 복제 기술은 복제품이 개별적 상황에 있는 수용자에게 다가가도록 함으로써 복제품을 현재화시킨다.”[2]
벤야민의 이론은 일부에서는 기술주의적 사고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기술혁명이란 사회, 역사의 추세와 맞물린다는 예술 사회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새로운 형태의 예술 발전에 따라 아우라는 몰락하고, 새로운 지각 작용을 발전시킨다.

(도판2)
셰리 레빈(Sherrie Levine), <워커 에번스를 따라서(After Walker Evans)>, 1981
세리 레빈은 1978년에 출간된 워커 에반스의 <워커 에반스: 처음과 끝(Walker Evans: First and Last)> 사진집의 도판을 그대로 다시 촬영하여 자신의 개인전에 출품한다. 비록 저작권법 위반으로 재판까지 간 작품이지만, 원작(original)과 복사(copy)의 경계를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메트 오페라 – 카르멘>에서 필자가 주목했던 것은, 영상 오페라가 앞서 언급한 오페라 요소들의 조화를 영상에서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연 예술이 여타 회화, 조각 등과 같은 조형 예술과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는 극적인 전개 과정에 있다.[3] 이 과정 속 극적인 부분들은 대개 배우들의 몸짓이나 표정에서 드러난다. 영상 오페라에서 카메라는 관람객이 현장에서는 미처 포착하지 못하는 배우의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예컨대 <메트 오페라 – 카르멘>은 집시 여인 카르멘이 호세를 유혹하는 아리아 ‘하바네라’ 장면에서, 카메라는 약혼녀 미카엘라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호세를 화면 안에 담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통해 이해되던 ‘하바네라’의 극적 요소가 카메라의 초점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이 작품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극적 요소를 직접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현장에서 조마조마하며 무대를 감상하는 묘미는 없지만, 오페라의 전개 과정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은 기존 오페라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감상을 불러온다.

(도판3)
<메트 오페라 – 카르멘> ‘하바네라’ 장면 중 일부 발췌
동영상 - http://www.metopera.org/discover/video/?videoName=carmen-lamour-est-un-oiseau-rebelle-elina-garanca&videoId=659188787001
벤야민에게 있어 새로운 예술 형식의 등장은 예술 작품이 제한적인 생산의 제약에서 벗어나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든 예술 작품을 수용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의미로 보인다. 고전 작품의 흐름을 따르는 오페라의 다소 폐쇄적인 형식이 우리 시대에서 수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것은 벤야민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예술 작품이 높은 문턱에서 내려와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것. 물론 기술 복제 시대에서 잃어버린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해서는 또 다른 문제로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심혜련, 『20세기의 매체 철학』, 그린비, 2012.
윤미애, (1999),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에 관한 연구”, 독일문학, 제71권, 3호, pp.388~415.
김지희, (1995), “19세기 음악의 리얼리즘에 관한 연구 : 비제(G. Bizet)의 오페라 "카르멘(Carmen)"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하선규, ‘`삼시세끼`가 주는 매체미학적 단상’, 2015, 칼럼(디지털타임스)
도판 출처:
http://www.metopera.org
https://www.pinterest.co.kr
[1] 심혜련, 『20세기의 매체 철학』, 그린비, 2012, pp.344.
[2] 윤미애, (1999), “벤야민의 <아우라> 이론에 관한 연구”, 독일문학, 제71권, 3호, pp.388~415. (발터 벤야민, (1935),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Reproduzierbarkeit), 」 , p p . 47 7 , 재 인 용 .
[3] ‘오페라는 본질적으로 소설, 연극에서 볼 수 없는 모방, 표현, 흥분적인 요소를 가진다. 여기서 흥분의 요소는 열정적인 성향을 의미한다. 열정적인 요소는 다른 음악 형태와는 다르게 오페라 비평에서 항상 논의된 사항으로 오페라의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김지희, (1995), “19세기 음악의 리얼리즘에 관한 연구 : 비제(G. Bizet)의 오페라 "카르멘(Carmen)"을 중심으로”, pp.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