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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gina Hyunjoo SONG

[국문] 당신의 베아트리체 – 현대 미술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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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베아트리체 – 현대 미술 감상하기

송현주 Regina Hyunjoo SONG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Stendhal,1783-1842)은 귀도 레니(Guido Reni, 1575-1642)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도판 1)이라는 그림을 감상하고 나오던 중 다리가 풀리는 현상을 경험한다. 스탕달은 그의 책 『나폴리와 피렌체:밀라노에서 레기오까지의 여행』에서 예술 작품을 보고 무릎에 힘이 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던 당시 상황을 기록하였다. 이처럼 특정 예술 작품을 보고 기이한 신체적 현상을 겪는 것을 오늘날에는 ‘스탕달 신드롬’으로 불리고 있다. 이 신드롬은 1979년 이탈리아의 정신의학자 그라치엘라 마게리니(Graziella Magherini)가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관람객을 대상으로 100여 건의 사례를 조사한 것으로 유명해졌지만, ‘스탕달 신드롬’을 정신 질환이라도 뒷받침할만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한다.

(도판 1) 귀도 레니,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17세기, 캔버스에 유채, 60x49cm, 루브르박물관

스탕달처럼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는 아니더라도, 예술 작품을 보고 황홀경을 경험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작품 판단의 기준이 너무 다르고, 혹 누군가는 작품 감상을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사실 감상을 위한 예술의 역사는 불과 몇백 년밖에 되지 않으며, 작품을 비평한다는 것도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시작된 일이다. 따라서 예술을 감상하는 게 어렵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특히 인간의 감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호하다. 이러한 ‘모호하다’는 말을 독일의 미학자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 1714-1762)은 탐구 대상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이 대상에 대한 인식이나 인식 방법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1] 이는 즉 인간의 감성은 모호하지만, 감성에 대한 통찰은 연구할 수 있다는 ‘미학’의 최초 실현이었다. 바움가르텐의 미학은 이후 레싱과 헤르더에 의해 구현되며, 오늘날 미학이 다양한 예술 장르의 근간이 되는 업적을 남겼다.

예술이라는 술어가 성립되는 것은 먼저 예술을 기술이라는 개념에서 분리했다는 데에 있다. 근대 예술론을 다룬 오타베 다네이사의 『예술의 역설』에 따르면, 근대에 이르러 예술 수용 방식은 고전적 예술관의 원상-모상의 관계에서 예술가-예술작품-향수자로 변화하였다고 한다. 저자는 여기에서 독창성 개념을 설명하며, 근대 시기에 예술가가 모방해야 할 것은 외적 자연이 아니라 예술가의 내적 자연이 되었다고 본다. 결국, 근대 시기에 비로소 예술가는 더이상 기술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자기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진 것을 알 수 있다.

(도판 2)

침대 시트가 신체 분비물로 얼룩지고,

바닥에 속옷, 쓰레기 등이 널브러져 있는

트레이시 에민의 <나의 침대>.

(1998년 전시)

쇼크 아트(Shock Art)는 불안한 이미지, 소리 등을 통해 충격적인 경험을 보여주고자 하는 현대 미술이다. 1917년에 제작된 마르셀 뒤샹의 <샘>(1917년)를 쇼크 아트의 원조로 보고 있으며, 이후 피에르 만조니의 <예술가의 똥>(1961년), 안드레스 세레노의 <오줌 예수>(1987년), 트레이시 에민의 <나의 침대>(1998 년)를 대표적 예시로 들 수 있다.

근대적인 예술관은 오늘날 여러모로 변용되고 있으며, 예술의 수용 방식 또한 근대의 형식과 비교될 수 없다. 우선 현대 미술에서는 정해진 사조와 화풍을 갖춘 예술 작품에 의의를 두기보다, 작가와 감상자가 개별적으로 가지는 예술 개념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대 미술 중에서도 쇼크 아트(Shock Art) (도판2)은 근대 예술 작품과는 전혀 거리가 멀며, 예술 작품이 가지는 담론 이외에 감상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도판 3)

안드레스 세라노, <오줌 예수>, 사진작품,

1987년, Walter Otero Gallery 소장

미국의 사진작가 안드레스 세라노는 자신의 오줌이 담긴 유리잔에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상을 넣어 사진을 찍었다. 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논란이 되었으며 특히 1997년 10월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전시에서는 작품이 훼손되어 전시가 중단되기까지 했다.

예술이 아름다움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라고 쓰고 있는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의 저자 신시아 프리랜드는 피, 오줌, 동물의 사체, 성형수술 등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을 이론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에 따르면, 안드레스 세레노의 <오줌 예수>(도판 3)는 오줌이 단지 분비물로 그치지 않고, 종교적인 힘과 정신력의 근원으로서 형식과 재료가 타당하다. 저자는 현대 미술과 이에 따른 논의들에 대비하여 근대 미학자들의 미학 이론이 예술을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칸트의 미적 판단 기준에서 나온 ‘정원의 잘 익은 딸기가 루비처럼 붉은 색깔과 부드러운 촉감을 가지고 있고 향기가 너무 좋아서 한입에 따먹는다면 그것에 대한 미적 판단은 오염되어 버린다’는 문장처럼, 더이상 근대의 감상이라는 의미를 현대 미술에서는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현대 미술이 이처럼 과거와는 다른 의미를 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신시아 프리랜드가 언급했던 것처럼, ‘어떤 감정을 자신에게서 불러내기 위해 사람은 일단 경험을 하며, 이 감정이 동작, 선, 색채, 음향 혹은 언어로 표현된 형식들에 의해 자신 속에서 환기되면, 다른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경험하도록 이 감정을 전달’하는 표현론이 감상을 대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대 미술이 근대의 예술 형식과 수용 방식에 있어 차이를 보일지라도, 개인이 느끼는 예술의 경험은 오히려 예술가와 개인 모두에게 확고해지고 있다는 점이다.따라서 현대 미술이 감상에 그치지 않고, 개인을 둘러싼 논의와 개인 자신을 알고자 하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모호한 예술과 개인의 특별한 관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1] 에른스트 카시러, 『계몽주의 철학』, 박완규 옮김, 민음사, p. 451~452.

참고 문헌:

에른스트 카시러, 『계몽주의 철학』, 박완규 옮김, 민음사, 1995, p.367~474.

오타베 다네이사, 『예술의 역설』, 김일림 역, 돌베개, 2011, pp. 405.

신시아 프리랜드,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But is it art?), 전승보 역, 아트북스, 2002, pp. 264.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휴머니스트, 2007, pp.328.

도판 출처:

(도판 1) https://en.wikipedia.org/wiki/Beatrice_Cenci#/media/File:Cenci.jpg

(도판 2) https://en.wikipedia.org/wiki/My_Bed#/media/File:Emin-My-Bed.jpg

(도판 3)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1/16/2008011601177.html

[1] 에른스트 카시러, 『계몽주의 철학』, 박완규 옮김, 민음사, p. 45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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