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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예술가의 똥 , 예술가의 ‘무엇’ - 팟캐스트 14부 보조칼럼

4월 7 업데이트됨


예술가의 똥 , 예술가의 ‘무엇’

(Artfact podcast 14부 유럽의 모노크롬 보조칼럼)

SONG Song Yi 송송이

Artfact Podcast 14부 방송으로 유럽의 모노크롬(Monochrome)을 다루었다. 모노 mono, 즉 하나 혹은 단일의 의미를 포함하는 용어로써, 미술사에서는 이미지가 없고 한가지의 색채로 이루어진 ‘회화’를 지칭한다. 보통 일반적인 관람자들은 이러한 모노크롬 작품을 보고 “뭐야? 그림이야? 나도 그리겠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모노크롬 회화의 가장 주요한 기준점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는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그림과 더불어 루치오 폰타나, 애드 라인하르트 그리고 IKB의 이브 클랭까지 1960년 현대미술의 격변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은 지대하다. 그러나, 오늘 다룰 작가는 이들과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뚜렷한 모노크롬 작가도 아니고 다다이즘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지만 따지자면 다다이즘 보다는 플럭서스나 개념미술에 가까운 작가 ‘피에르 만조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950년 이후 미술시장의 주도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부자들을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과열되었다. 이러한 현실에 반감을 가진 예술가들은 기존 예술에 대한 조롱으로 개인이 소장할 수 없는, 개념과 생각이 우선시 되는 작품들을 만들게 되었다. 개념미술과 다다이즘은 ‘고전적인 예술과의

결별’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다다이즘은 이전까지 일반적인 회화나 조각 등의 ‘형식’의 파괴라면 개념미술은 부자들에 길들여진 현대미술의 ‘이면’을 공격하고자 나온 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다다이즘의 대표적 작가인 마르셸 뒤샹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사용하는 것은 전통적인 미학을 낙담시키기 위해서였다. 나는 미학자들의 얼굴에 하나의 도전으로 변기를 던졌다.”

그는 ‘변기’라는 이미 만들어진 생산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이전의 예술의 개념(미술사를 돌이켜보면 고대로부터 조각이나 회화에 사용된 재료는 한정되어있었다.)을 바꾸어 버렸다.

한편, 피에르 만조니는 1950년 이후 부자들을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과열되는 양상에 반기를 들며

기존 예술에 대한 조롱의 뜻으로 <예술가의 똥>이란 작품(Artfact podcast 14부 참조.)을 내놓는다. “네 작품은 쓰레기 같은 똥이야! (Your work is shit!)”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은 만조니가 이 작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는 일화가 있다. 재미있게도 그의 아버지가 통조림 공장을 운영해 만조니의 작품 제작을 돕기도 했다는 후문이 존재한다.

아무튼, 만조니는 앤디워홀의 “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라는 명언(?)을 직접실현하고야 말았다. 만조니의 이 작품은 의미부여를 중시하는 사회를 향해 “의미 없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의미 있다. (Being is all that counts.)”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부자들의 소유물 혹은 과시(誇示)물로 예술을 쫓는 맹목에 대해서 표현의 주체인 예술가를 ‘배설하는 기계’로 전락시킨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뒤샹과 만조니는 그들이 살고 있던 현실에 대한 비웃음으로 작품을 만들어 당시 미술시장을 풍자한 것이다.

하지만, 피에르 만조니의 생각과는 달리 그 당시 사람들은 ‘이 것’ 또한 참신한 예술품이라며 비싼 돈을들여 그 작품들을 구입했다. 뒤샹의 변기 역시 그 가격이 190만 달러 가까이로 치솟았다.

만조니의 모노크롬 작품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당시 라이벌이라 불렸던 이브클랭의 IKB에 반(反) 하여 ‘chrome(색소)’이라는 글자에 ‘a’를 덧붙여 ‘Achrome(색소결핍)’의 작품을 발표한다. 흰색의 단색적인 회화같은 이 작품은 도자기 제작에 사용되는 점토를 캔버스에 붙여 표면이 거칠고 고르지

않은 주름을 만들었다. 만조니의 목표는 순백색이 아닌 오히려 완전한 부재를 얻는 것이었다고 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모든 풍경이나 아름다움, 심오한 주제가 없는 ‘있는 그대로의 중립적인 표면’을 만들고자 했다.

만조니는 이야기가 있는 회화를 제거하고 싶어했고, 그의 작품에서 실제로 이미지와 색까지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그의 모노크롬은 관객이 스스로 정신적인 장면을 입힐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기에 만조니는 이 자유의 공간 안에서 관객이 작품을 보자마자 떠오르는 첫 번째 이미지를 발견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만조니의 모노크롬은 가능한 한 절대적이며, 기록과 설명 그리고 표현이 없는 오직 그대로 존재해야 했고 그렇게 되었어야 했다. 만조니는 이런 의미에서, 앞서 얘기했던 모노크롬의 정의를 회화의 캔버스 뿐만이 아닌 ‘어떤 공간’으로 그 범위를 확장시켰다.

예술의 목적은 계속 변해왔다. 때로는 수련으로, 때로는 기록으로, 때로는 돈벌이로 존재했다. 예술의 모습 또한 다양하다. 변기가 될 수도, 똥이 될 수도 그리고 한가지 색의 평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나타내는 것은 같다. 그들은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을 보여준다. 바로 예술가들의 ‘무엇’을 통해서 말이다.

참고 :

-테이트모던 http://www.tate.org.uk/art/artworks/manzoni-achrome- t01871

-김달진연구소 칼럼 <예술과 비예술-현대미술에서 사용된 표현재료의 무제한성> 변종필.

이미지:

-만조니 사진,예술가의 똥 / 테이트 모던 온라인 컬렉션

- 뒤샹 샘, 만조니 Achrome / 필자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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