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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 Danielle Yeon-Jeong

[국문] 모순의 배반

4월 7 업데이트됨


GO Danielle Yeon-Jeong 고연정

[본 칼럼은 르네 마그리트 전시 리뷰의 보조 칼럼입니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그 말이 가지는 초-현실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이미 많은 사람들 가까이에 다가와있다. 팝 아트라는 단어에서 거미 같은 은발머리를 한 워홀의 자화상을 자동적으로 떠올리듯, 많은 이들이 초현실주의라는 단어에 달리 의 흘러내리는 듯한 시계가 있는 그림을 떠올리곤 한다.

좀 더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 그림을 떠올릴 것이다.

MAGRITTE Rene (1898 - 1967), La trahison des images, 1929, 59 x 65 cm, huile sur toile, Los Angeles County Museum.

바로,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

프랑스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밑에 있는 프랑스어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이미지의 배반인가 보다. 라고 생각할 것이다. 오히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이 그림에 대한 작가의 의도 중 하나를 명확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잠시 후에 그 의도는 설명하기로 하고, 파이프 그림을 가져와서 왜 뜬금없이 팝 아트와 달리를 이야기 하느냐고 한다면 '자동적'과 '떠올리곤 한다.'에 잠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떠한 주제를 두고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자동적으로 연상하는 것이 있을 테고, 한걸음 더 나아가, 워홀의 은발머리를 보고 거미 같다, 거미, 징그러움, 거미, 혐오, 거미, 알, 거미, ...... 라는 식으로, 비단 거미가 아니라 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연상되는 일련의 상황 혹은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초현실주의자들은 그러한 점에 매료되었는데, 마치 우리가 흔하게 전화 받을 때 나도 모르게 손으로 펜을 찾고 아무 종이에나 의미 없는 낙서를 하는 것처럼, 작가들도 일단 펜을 한 번 잡으면 미친 듯이 무의식 속에 떠다니는 이미지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나중에 알아볼 수 없게, 낙서처럼 표현된 것이 바로 자동기술법, 오토마티즘의 한 부류이다. 당연, 오토마티즘으로 얻어진 결과는 가히 추상적일 수 밖에 없는데, 초현실주의자 모두가 이런 못 알아먹을 형태의 그림 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는 마그리트의 그림은 추상적 이라기엔 사실적인 경우가 많다. 나는 이것을 사실적인 비현실이라 말하고 싶은데, 오늘 볼 이 그림은 사실과 비현실을 주고받고 있다.

무엇과 무엇이 주고 받고 있냐고? 바로 그림파트와, 문장파트가, 각각이 사실이 되었다가, 비현실이 되었다가 하는 것이다. 그 유명한 데페이즈망을 말하기 전에, 이 주고받음에 대해 우리는 퍼스 (C.S. Peirce) 예술과 작가와 인식 혹은 기억에 관해 그린 기호학 시스템을 봐야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비단 언어 뿐만 아니라 이미지의 해석에 적용해 본다면 마그리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술에서는 각 꼭지점에 위치하는 것들을 약간 바꾸어서 적용해야할 필요가 있다.

쉽게 생각하자면, 정신적인 어떤 것과 작가 그리고 해석자 또는 해석자 그룹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정신적인 어떤 것은 작가의 뇌에 먼저 기억과 경험으로 인해 존재하거나 존재하여 질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작업실에서 시각적인 구현화가 된다.

이 시점에서 작가는 이를 구현할 때 의도적인 아니든 어떠한 코드를 이용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혹은 미술사적으로 익히 사용해 온 코드일 수도 있고, 작가 본인만의 코드 일 수도 있으며,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거나, 공통된 생각을 해온 해석자 간에서 인식되어 이해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를 해석할 때는 다양한 것들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업실에서 정신적인 어떤 것을 자신의 작업실에서 시각적인 구현화를 했다고 해서, 그것이 해석자에게로의 전달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신적인 것은, 전시장소에 전시하고, 해석자가 눈으로 보았을때, 전달되는 것이라 볼 수있다.

그리고 해석자는 그 것을 시각적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또는 지속적으로 머리에 정신적인 어떤 것을 떠올리게된다. 일종의 연상작용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인 것을 떠올리는 행위는 이 시스템에서 가장 첫번째에 존재한 정신적인 어떤 것과 꼭 같은 것이라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정을 2차적원 적 순환하는 삼각 구조라 이해하려 한다면 이해가 어려울 수 있으나 (우측 상단의 그림처럼), 3차원적 입체적인 구조라고 생각한다면 이해하기 쉬울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모든 작품에 적용할 수도 있으나,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 적용하여 해석하기 전에 이러한 시스템을 생각한다면, 한결 받아들이기 더 편할 것이다.

더불어, 미술학적 개념에서는 데페이즈망이라는 용어를 꺼내어 볼 수 있는데, 데페이즈망은 쉽게 말해서, 익숙한 사물이나 익숙한 사물을 그린 그림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전혀 다른 장소에 있음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괴함, 놀라움, 환상, 신비로움을 이끌어 낸다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데페이즈망에 기거하여 해석한다면,

첫 번째로는 파이프 그림이 있어야 할 위치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고 명시된 문장 자체가 있어야 할 위치는 다르다. 그림은 명백하게 파이프를 사실적으로 명시하고 있고, 문장 자체는 파이프가 아님을 명백하게 명시하고 있으므로 서로 놓여진 자체가 모순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 자체가 데페이즈망이 의도하는 기괴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 작가의 첫 번째 의도라면, 두 번째 의도는 반대로 문장 자체에 기거하여, 실제로 그림 파이프는 아무리 실제와 흡사하게 묘사를 했어도 실제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파이프가 아니라는 문장자체가 명백한 사실이 되는 것이다.

이와 연관 되어 세 번째 해석이 도출될 수 있는데, 만약 이 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문장에 관점을 둔다면 무의식 속에서 다른 사물을 상상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이라는 것은, 이성으로 철저하게 막고 있기 때문에, 세 번째 해석은 실현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인지, 마그리트는 당신의 이성 뒤의 무의식을 끌어내기 위해 말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당신을 위한 마그리트의 말장난 그 첫 번째.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제목자체가 야기시킬 수 있는 상황이 있다.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제목은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언어로 해석이 되겠지만, 이 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문장 자체는 프랑스어의 상태로 작품자체에 명시되어 있다.즉, 프랑스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림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주어지지 않음을 가정할 때,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Pipe라는 단어가 딸기라고 말해주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문장 자체를 해석했을 때, 이것은 딸기가 아니다. 로 됨과 동시에 어떠한 모순도 파괴되므로 앞의 일련의 해석을 뒤엎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나쁜' 말장난으로, Pipe자체가 속어로 펠라씨옹 (구강성교) 을 의미하는데, 빤다 라는 행위자체가 동일하므로 두 가지 행위를 연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아주 약간 어려운 이야기로 들어가서,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괴리에서 생기는 외적, 혹은 내적인 빈 공간이 있는데, 바로 이 공간이 주는 허무함을 초현실주의가 발발했던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생겨난 무의식적인 허무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겠나 ?

혹은 관객이 작품을 응시, 혹은 생각을 해야만 기법이나 기법자체에서 오는 모순이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이 작품에 참여하여 작품을 마침내 완성시킨다는 관계미학적 관점에서도 해석 가능하지 않겠나 ? 하는 질문들을 던져보며 이번 칼럼 마침

작품 정보

MAGRITTE Rene (1898 - 1967), La trahison des images, 1929, 59 x 65 cm, huile sur toile, Los Angeles County Museum.

참고 서적

FOUCAULT Michel (1926 - 1984) , Ceci n'est pas une pipe, Fata Morgana, Montpellier, 1986.

JOLY Martine, Introduction à l'analyse de l'image, Armand Colin, 2009.

이미지 출처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

http://lavoieestlibre.wordpress.com/2012/01/23/le-succes-dun-artiste-non-ceci-nest-pas-une-pipe/

Modèle triadique du signe selon Peirce :

https://unmondemoderne.wordpress.com/2013/05/26/introduction-a-lanalyse-de-limage-par-martine-joly/

Reedy et Reedy, C.S. Peirce, diastole/systole :

본 칼럼의 필자 개인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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