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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 Danielle Yeon-Jeong

[국문] 외로움의 가시화 II

최종 수정일: 2020년 4월 7일


외로움의 가시화 II

고연정 GO Danielle Yeon-Jeong

앤디 워홀은 달랐다. 워홀이 비록 ‘슈퍼스타’ 들에 둘러싸인 슈퍼스타였다 하더라도, 그의 지독한 외로움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인생에서 15분간의 스타 밖에 될 수 없다고 해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외로움을 가중시켜도, 어쩌면 워홀은 그 것이 스타의, 아티스트의, 그리고 그 어느 때 보다 찬란했고 어두웠던 그의 생의 숙명이라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의 외로움은 그의 수많은 반복이 나열되어 있는 작품에서, 역설처럼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의 펙토리에서 대량생산되어 왔지만, 그 후의 워홀은 밖으로 보여주던 스타작가로의 열망, 그리고 그 밑에 깔고 있던 외로움을 재난 연작에서 다소 폭력적인 시각적 효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캔 참치 재난에서는, 기름 참치 캔을 먹고 보툴리즘 균에 감염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 두 여인에 관한 신문 기사를 찍어냈는데, 이러한 기사를 다루면서도, 마치 참치 캔은 그의 그 유명한 캠밸 수프 캔을 연상하게끔 의도적으로 반을 넘는 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죽음이라는 것이 결코 먼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당연하지만 와 닿지 않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가능하고, 명백하게 상업에 대한 비판을 표면에 제시함과 동시에, 한 편으로는 자신의 작품까지 연상하게 하는 일종의 사업 수단을 쓴 것이다. (워홀은 그가 최대한 많은 초상화를 제작하는 이유는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가 사업적 전략을 가진 아티스트라는 것이 증명 가능하게 되었다.)

전기의자에서는 사형 집행의 도구로 사용되는 전기 의자를 여백이 많은 공간의 중심에 제시해 둔다. 관객은 가로 세로 2미터가 넘는 작품의 크기와 그 색감 앞에서 압도된다.

이 색감과 여백이 어우러져 작품의 장식성을 높였다는 해석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과연 전기의자를 자신의 집에 자연스럽게 걸어둘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기서 부 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이렇듯 명백하게 죽음을 제시하는 작품 앞에서도 관객이 두려움이나 거북함을 좀 덜 느낄 수 있도록 전기 의자를 정면이 아닌 왼쪽을 비스듬히 향하도록 해둔다. 이러한 효과로 인해, 작품 앞에선 관객은, 전기의자를 보고 있지만, 전기 의자 그리고 그 전기 의자 위에 언젠가는 앉게 될 사형수는 관객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게 됨을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효과는 일반적으로 사형이 집행될 때 이중 유리를 써서, 사형수는 유리 안의 사람들을 보지 못하지만, 유리 안의 사람들은 사형수를 보게 되는 효과를 재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끔 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워홀이 전 세계적으로 만연했던 상업, 불안함, 기계화, 상업의 폭력성, 우위에 서고 싶었던 인간의 폭력성 등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조롱하듯, 그러나 그 흐름의 중심에서 마치 그 시대가 사람이라면 워홀 그 자체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한 워홀의 생각도 총성 앞에 흔들리던 시기가 있었고, (워홀의 64년 작업실 총격사건은 후에 그의 총맞은 마릴린의 가격의 수직상승을 예약해 주었지만) 68년 발레리 솔라리스의 총격사건은 작게는 그가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지나간’ 스타들과의 관계부터 죽음과 생의 관계에까지 범람하는 일종의 트라 우마를 안겨주게 되었다.

이러한 트라 우마 시기 이후, 워홀은 세계의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다 모티프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자신은 그 흐름에서 잠시 한 발을 빼내고 한 발은 여전히 담글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니, 미국의 스타작가라는 칭호와 예술가가 아니라 엔터테이너, 혹은 속물이라는 조롱까지 동시에 받은 워홀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서구’로 대표되는 그 세계에서 온전히 이방인, 아웃사이더가 될 수 없었던 워홀의 두려움은 얼마나 인간적인지.

지금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말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그 기분, 어떻게 말하면 그의 자존심 그 밑바닥이었던 외로움을 워홀이 호퍼의 그 것처럼 친절하게 관객의 눈 앞에 내보이기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우울증 약도 그의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 복용하고, 자신의 ‘지나간’ 스타의 비참한 전화가 자신의 이면의 동일한 비참함을 들어낼까 외면한 워홀이 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추측 가능한 가정이다.

외로움이란 단어는 처음에 말했듯이, 직접적인 화법을 거치면 때로는 그것이 그 무게보다 가벼워 지기 마련이다. 워홀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자신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자신의 외로움은 원했지만, 그 것을 자신의 손으로 모두가 알아채도록 제시하기는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워홀은 무엇인가를 비판하는 듯한 장치를 폭력적으로, 때로는 조롱하듯, 관객 앞에 들어올리고, 바로 그 밑에 그가 숨기고 싶지만 알아줬으면 하는 것을 깔아놓는다.

말하지만, 말하지 않는 방법을, 어떻게 보면 불친절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작품 정보

WARHOL Andy (1928-1987)

- Catastrophe du thon, 1963, Serigraphie et acrylique sur toile, 104,1 x 55,9 cm

- Boite de soupe Campbell, 1962, Acrylique et serigraphie sur toile, 50.8 x 40.6 cm (Chaque toile)

- Catastrophe mauve, 1963, Serigraphie et acrylique sur toile, 269,2 x 208 cm

참고 서적

MONSEL Philippe, WARHOL 1928-1987, Ed. Cercle d’Art, 1997

POLSKY Richard, I Bought Andy Warhol, Harry N. Abrams, June 1, 2003

이미지 출처

http://duclock.blogspot.fr/2010/12/andy-warhol-occuper-lesprit.html

http://www.moma.org/collection/object.php?object_id=79809

http://loeildukrop.eklablog.com/

http://aa-joseph-vallot.blogspot.fr/2011/12/petite-histoire-de-la-peintur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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