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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7화, 예술 취향의 문제 1, Giambattista Tiepolo


w. 고연정



Giambattista Tiepolo, 클레오파트라의 연회, 1743-1744

253x357cm, 캔버스에 유채,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하늘을 맑다 못해 청명하다. 건너편의 군중들은 무어라도 구경하는 듯 건너편 야외 회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식탁에는 화려한 장식이 된 흰색의 천이 둘러져 있고, 화려한 복장의 여성은 작은 진주를 음료에 빠뜨리기 직전이다. 주변을 둘러싼, 하인들과 악사, 무희, 곡예사, 익살 극 배우, 난쟁이, 기형인, 마술사들과 화려한 장식품으로 보건데, 이 연회는 아주 화려하고 난잡한 연회였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이토록 화려한 진주를 빠뜨리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그녀의 시선은 오히려 맞은 편의 군인 복장의 한 남자에게 닿아 있다. 마치, 내가 못할 것 같으냐 묻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한 편, 이 군인의 시선은 투구에 가려져 있어, 진주를 보는지, 아니면 진주를 음료에 넣으려는 그녀의 행위를 보는 것인지, 정확치 않았다.


이 장면은 플루타르크의 이야기에 나오는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위해 열어준 연회의 한 장면이다.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권력, 또는 사랑을 위해 연대한다. 그 과정에서, 클레오파트라의 남편이었던 카이사르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카이사리온 한 명 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그 것이 로마인들은 근친상간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클레오파트라로 하여금 딸을 임신할 수 없게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의 말에 이미 죽은 카이사르에 대한 배신감을 숨기고, 파라오인 자신이 자녀를 잉태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일강이 4년째 범람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특별한 피를 가진 안토니우스의 자식을 잉태하겠다 말한다.


그렇게 둘 사이에 권력을 배경으로 한 연인 관계 성립되었다. 이 연회는 그 후,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에게 열어준 연회로, 알렉산드리아의 좋은 날씨와 좋은 포도주,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까지 성립한 안토니우스가 두 달이 넘도록 매일 이어지는 연회의 방탕함에 취해버린 장면, 그리고 그 극에 치달은 분위기를 표현한 장면이다.



Giambattista Tiepolo, 클레오파트라의 연회, 1746-1747

650x300cm, 프레스코, Palazzo Labia.



« 연회의 행태가 난잡해 질수록 안토니우스는 더 즐거워했고 더 활기에 찼다. 소시게네스는 이 시바리스풍의 연회가 더 다양한 형태로 진행될 수 있도록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임무를 맡았다. 그 결과 알렉산드리아에 정박된 모든 선박에서는 지중해 동부 전역에서 모인 악사, 무희, 곡예사, 익살극 배우, 난쟁이, 기형인, 마술사 들이 쏟아져 나왔다. ». [1]


비록 권력을 위해 이루어진 관계라 하더라도, 클레오파트라의 심기가 편했을 리가 없었다. 이 연회 중,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값비싼 진주를 포도주 잔에 넣고, 그 포도주를 마시라고 했다. 그는 진주가 산에 녹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진주를 포도주에 담갔고, 진주는 녹지 않았다. 그녀가 포도주를 마실 이유가 없었다.


화가 그레그리오 라차리니의 공방에서 장식적이고 전통적인 회화에 대해 습득한 티에폴로는 이 회화와 벽화를 그릴 때쯤, 그는 이미 베로네즈 풍의 화려한 색감과 감각적인 형태에 익숙해져 있었고, 바로크 양식에서 비롯된 극적인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명암법에도 뛰어난 예술적 자질로 인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후였다. 그가 팔라조 아르킨토와 팔라조 듀냐니를 화려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신화와 역사화로 장식했을 때가 1731년이였으며 1734년 빌라 로스키를 장식하기 위해 소묘를 여러 점 그린 것으로 보아, 그는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밤낮으로 쉬지 않고’ 회화를 작업하는 화가였던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연회 세부



클레오파트라의 연회를 다각도로 그리기 시작했을 때, 그의 회화는 바로크 풍, 카라바지오 풍, 베로네세풍 그리고 로코코풍의 완숙한 필치를 드러내고 있었다. 국제적인 취향이 회화에 반영된 것이다. 특히 오른편에 앉아있는 클레오파트라의 다소 딱딱한 자세에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흘러내리는 듯한 주름으로 장식된 드레스 끝자락으로, 그리고 그 끝자락이 닿아 있는 바닥과 계단으로 이어지는 곳에 앉아있는 작은 개로 이어진다. 이 작은 개의 시선은 역동적으로 계단을 오르려 하는 난쟁이에게로 이어지고, 이 난쟁이의 동선에 따라 관객의 시선은 식탁으로 향한다.



클레오파트라의 연회 세부



배경을 이루는 회색말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 그리고 화려한 옷과 장신구들의 색감, 정교하게 짜인 건축물까지 모두 어우러진 이 장식화는 클레오파트라 왕궁의 로지아가 얼마나 화려하였는지를 연상하게 하고, 이 회화와 벽화가 장식될 곳의 화려함 역시 함께 돋보이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단 화려함 만이 그를 국제적 명성을 가진 장식화가로 이끈 것은 아니다. 당시의 회화는 주문자의 취향을 만족하는 것이어야 했다. 화가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 어도, 후원자와 주문자의 취향을 읽어내지 못하면 좋은 화가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취향은 곧, 상류층의 문화를 의미했으며, 그 중에서도 주류의 취향은 시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유럽으로 퍼지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취향의 유행에 따라 그 것을 습득하는 화가가 있고, 본능적으로 그러한 취향을 알아내고 – 때로는 선두 할 능력까지 있던 화가가 티에폴로가 아니었을까.

그가 클레오파트라의 회화를 완성한 후, 1750년에서 1780년경 ‘로꼬꼬 고전주의’라 일컬을 수 있는 혼합된 양식이 나왔다. 이 양식은 일종의 절충주의로, 당시의 후원자들에게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었던 로꼬꼬 양식에 반대하는 양식인 고전주의를 오히려 혼합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고고학적 고전주의’가 있었다. 그리스와 로마예술의 고전 체험에 의존한 주제를 가진 회화들이라 볼 수 있겠다.



Jacques-Louis David, 호라띠우스 형제의 선서, 1784, 330x425cm, 유채, Musée du Louvre.



« 이 경우에도 고대에 대한 학문적 흥미가 먼저 생겨서 그것이 새로운 예술사조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취미의 변화가 있었고, 또 이러한 취미의 변화는 그것 대로 삶의 가치들의 변화를 바탕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2]


Jacques-Louis David, 마라의 죽음, 1793, 128x165cm, 캔버스에 유채, Musées royaux des Beaux-Arts de Belgique.



즉, 경박하리 만치 관능적이고 쾌락적인 로꼬꼬 양식의 회화에서 청교도적 생활이상과 함께 엄숙한 회화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엄숙한 회화의 이면에는 영웅정신과 자기희생, 조국애와 같은 것들이 있었다. 우리는 다비드의 호라띠우스 형제의 선서마라의 죽음에서 보여주었던, 엄숙한 주제도 알고 있지만, 명암으로 강조된 극적인 분위기를 함께 본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의 연회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이 방탕한 연회에, 그리고 안토니우스의 거만한 태도에 가진 부정적인 태도, 그리고 그 배경에 있을, 연회에 참석한 고위 관료들의 아내들의 불만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상황. 이러한 극적 요소가 바로 클레오파트라가 포도주에 진주를 빠뜨리기 직전, 안토니우스를 바라보는 시선과, 같은 장면의 다른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를 바라보는 시선이 맞닥뜨렸을 때 주는 긴장감이 고전주의의 연출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나 이 둘을 둘러싼 많은 화려한 군중과 장식에도 비롯하고 말이다.


티에폴로의 회화가 고전주의나 리 꼬꼬 고전주의 양식의 회화라 단정짓기에는 약간의 시대착오적인 오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티에폴로가 고전주의 양식의 회화를 그리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이러한 연출이 녹아 있는 회화가 국제적 취향을 반영하고자 한 시도 까지는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1] 콜린 매컬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1 : 마스터스 오브 로마 7부, 교유서가, 2018.

[2] 아르놀트 하우저, 염무웅, 반성완 옮김,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창작과 비평사, 2004, p. 186.



참고문헌


콜린 매컬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1 : 마스터스 오브 로마 7부, 교유서가, 2018.


아르놀트 하우저, 염무웅, 반성완 옮김,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창작과 비평사, 2004.


이미지 출처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the-banquet-of-cleopatra/wwFHnS1cmltkFw?hl=fr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iepolo,_Giovanni_Battista_-_The_Banquet_of_Cleopatra_-_1746-47.PNG


https://fr.wikipedia.org/wiki/Le_Serment_des_Horace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eath_of_Marat_by_Davi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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