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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나라 프랑스? 국립이민사박물관


w. 김진아


프랑스인 4명 중 1명은 이민자의 후손이다.



프랑스의 지하철을 탔던 분이라면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지면 광고. 프랑스 국립이민역사박물관(Musée de l’histoire de l’immigration)의 슬로건 중 하나입니다. 알려지지 않았지마 프랑스는 이민자들의 나라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그 수가 아주 많은 나라입니다. 실제 국립통계경제연구소 (Institut National de la statistique et des études économique) 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 세대의 조부모대로 올라가 보면 4명 중 1명이 이주민 출신이며, 프랑스 인구 6천 6백만 명 중 7백 85만 명, 즉 11.9 %가 이주민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1] 또한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불법체류자의 수 역시 35만 명으로 예상되어 이들까지 합한다면 엄청난 수의 이민자와 그들의 후손이 프랑스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이민자에 대한 프랑스 여론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2019년 연구조사에 따르면 이민자에 대한 이미지와 감정은 대체로 부정적인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의 65프로는 걱정, 50프로가 분노, 이민자들 때문에 경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 51프로, 9프로만이 이민자들이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다고 답했습니다.[2]


프랑스 이주민 역사가 제라르 누아리엘은, 1980년대 초까지 프랑스에는 이주민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대중들이 이주민을 기억하는 장소는 물론 존재하지 않았지요. 사학자 피에르 노라가 주장한 프랑스의 기억의 장소에서 이주를 기억하는 터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기억의 부재. 그 자체였다고 보입니다.



국립이민역사박물관 정문


오늘 소개해드릴 국립이민역사박물관은 이러한 잊혀 있던 이민자들의 역사를 위한 유럽 최초의 국립박물관입니다. 파리의 동쪽 방센느 숲 근처 에 위치한 포르트 도레(Palais de la Porte dorée) 궁 건물에 자리잡은 이 박물관은 자크 시락 대통령 시절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투봉에 의해 건립이 추진되고,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재임 때 개관되었습니다. 이민자 – 이방인을 프랑스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는 의의가 있었지만 국립이민역사박물관은 개관 전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논쟁 속에 휩싸여왔습니다.


식민지 박물관에서 국립 이민역사박물관으로.


프랑스 내의 이민자들의 역사의 시작은 언제일까요? 유럽에서도 굉장히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는, 먼저 프랑스 대혁명 이전 중세시기, 이탈리아에서 건너왔던 예술가들과 정치인들, 세공사와 같은 장인들, 17세기 네덜란드인, 영국 기업, 기계공, 그리고 조금 후 첫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유입된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는 왕의 소유물이었던 국가의 주인이 시민과 국민이라는 주제가 주목받게 되며 나폴레옹 1세 때 국적의 개념이 자리 잡게 됩니다. 이 후 19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이민자의 수는 폭등하게 되며 1830-50년대 교통수단의 발달과 폭발적 인구증가로 주변국으로 부터 이민자들을 환영하는 정책을 펼칩니다. 1848년 진행된 첫 인구조사에서는 이미 프랑스 내 외국인이 38만 명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1870년 프랑스 프로이센 전쟁, 세계 1차 대전을 거치며 전쟁에 나간 젊은 남성을 대신할 노동력으로 이주민들은 더욱 증폭될 뿐 아니라 제국주의 시절의 식민지, 아프리카 북부, 인도차이나 중국 등에서 징집된 노동력들이 위험성 있는 일 (먼지와 폭발 위험 있는 직업들 - Société nationale des poudures et explosifs)을 맡게되었습니다. 세계 2차대전에 이르러 많은 도망자와 유대인이 난민으로 들어오게 되고, 그 후 발생한 경제적 문제들에 있어 프랑스 국민들의 외국인 혐오가 점차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왔으며 그 엄청난 수에 비해 스스로 이민의 역사를 정면에서 바라보지는 못했습니다. 프랑스는 자국민과 외국민이 존재할 뿐 오랫동안 법적으로 이민자의 범주조차 가지지 못했습니다. 2007년 사르코지 정부 시절 최초로 이민부 - 이민 및 국가 정체성부가 공식적으로 등장하였지만, 이민자들의 권리 보호보다 관리 감독을 위한 목적이 강했고, 이마저도 2년 후에는 사라졌습니다. 이민자는 여론 속에서도, 공식적으로도 프랑스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부정적 존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민자 추방을 주장하는 극우 정당 민족전선 - Front National은 탈냉전이 본격화된 1990년대 이후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 이슈가 된 무슬림에 대한 문제 제기로 표를 얻었고 최근 시리아 난민, 테러 문제와 더불어 지지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이민자가 프랑스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면서 이주민의 역사는 역사학계의 본격적 주목을 받게 되고, 이민자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을 변화시킬 박물관 건립의 논의가 시작됩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12년간 대통령으로 있었던 시락 대통령은 프랑스 사회 속으로 이민자들을 통합하는데 박물관이 하나의 역할을 할 것이라 판단하고 이민자의 인식에 대한 긍정적 변화를 기대했습니다. 그의 기대와 달리 정치적 논쟁에 휩싸이면서 2007년 말 후임 대통령인 사르코지 정부 시절 겨우 개관되게 됩니다. 국립 박물관의 개관식에는 대통령이 참여하는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르코지대통령은 이 새로운 국립박물관 개관식에 불참하게 됩니다.


20여 년의 세월 동안 계속해서 미루어지던 박물관 개관을 추진시킨 건 다름 아닌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었습니다. 지네딘 지단, 티에리 앙리, 파트리크 비에라 등 이주민 출신 선수들의 큰 활약으로 프랑스는 우승을 맞이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우승 덕분에 국내 이민자들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대폭 완화되었고 강해져 가던 민족전선 후보 장 마리 르펜을 제치고 시라크 대통령이 결선투표에 진출, 이민사 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이 강해졌습니다.


이민사 박물관은 여러 후보지를 제치고 파리 12구 동쪽 방센느 숲 근처의 국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예술 박물관에 위치한 포르토 도레 궁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이 장소와 건물의 역사는 또 다른 논쟁을 만들었는데, 사실 이 포르토 도레궁은 1931년 파리 국제 식민지 박람회를 위해 건립된 프랑스 최초의 식민지 박물관 Musée permanent des colonies 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식민지 박람회 당시 11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규모에서 식민지와 유사한 마을이 전시장 내에 제작되었고, 방문객은 박람회의 슬로건인 ‘하루 동안의 세계 일주’에 걸맞게 프랑스가 가진 식민지의 모습을 한눈에 관람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박람회는 대략 80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 3,300만 티켓이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G. Goor, 식민지박람회 세부지도, 1931


식민지 박람회의 폐막 이후 그때 당시의 건축물과 오브제들이 박물관의 상설전시로 계속 전시되었고 박물관의 명칭만 바뀐 채로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식민지박물관에서 1935년 식민지 프랑스 해외 영토 박물관으로, 1961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예술박물관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식민지를 대표하는 공간이었던 포르트 도레궁의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박물관의 폐쇄가 200년 무렵 결정이 되면서 이 박물관의 유물들은 파리 깨브랑니 박물관과 인류사 박물관으로 옮기게 되었고, 비어있던 건물에 이민사 박물관의 건립이 확정됩니다.


컬렉션이 없는 박물관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왕가와 귀족의 사적 예술품 컬렉션을 보여주는 곳의 의미를 지니던 기존의 박물관과는 다른 의미를 가졌던 이민사박물관은 그 존재의 의미를 증명해야 했고, 스스로 하나의 조직망이라고 정의하고 다양한 협회, 기업, 단체, 대학 등과의 파트너쉽 구축에 힘써왔습니다. 단순한 컬렉션을 전시하는 박물관의 역할보다 기억과 역사 수집 프로젝트로서 유무형의 이민의 역사의 흔적과 그리고 사람들의 참여를 토대로 세워지는 새로운 장소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박물관이라는 오래된,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기억의 장소.


불법체류자들에게 점거당하다 - 국립이민사 박물관



2010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약 4개월간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아프리카 출신의 불법체류자들이 주를 이루어 체류 허가를 요구하기 위해 점거 시위를 펼친 곳이 바로 이 국립 이민사박물관이었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50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체류 허가증 발급 거절과 불친절한 행정처리에 항의하며 박물관 내부를 점거하는 방식으로 시위가 진행되었습니다. 장소의 선택에 있어서 당연하게도 이주 문제가 맞물려 있었습니다. 식민지의 역사에서 벗어나고 프랑스 사회 내부 이주민의 부정적 이미지 개선을 위해 개관된 이민사 박물관에서 행해진 시위를 통해 이민자들의 문제가 사회에 더욱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점거시위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시위 참가자들은 ‘프랑스 사회에서 겪는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 상태에서 프랑스 이민의 역사는 제대로 세워질 수 없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점거시위에도 불구하고 이민사박물관과 지하의 아쿠아리움은 두 달 가까이 운영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박물관의 직원들은 방문객에게 시위의 목적과 의미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시위를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가 된 것입니다. 시위 역시 영상화와 자료화가 되면서 이민사박물관의 새로운 자료와 흔적으로 남게 되면서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갔습니다. 인터뷰 중 한 시위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이민사 박물관에 있다. 이곳은 우리의 집이다 On est à la Cité de l’immigration, c’est notre maison’.


사실 이민사 박물관은 아직도 수많은 문제점과 논쟁이 이어져 오고 있는 공간입니다. 2010년 점거 시위에 대한 미디어도 많이 남아있지 않는 것처럼 여전히 이민자는 보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변화해가는 박물관의 존재와 그 의미에 있어서 이민사 박물관은 소외되어왔던 사람들의 기억과 참여로 완성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1] 참조링크 : https://www.google.com/url?sa=t&rct=j&q=&esrc=s&source=web&cd=&ved=2ahUKEwjtgKeWjfjtAhUF2BoKHSSVB50QFjAAegQIBBAC&url=https%3A%2F%2Fwww.insee.fr%2Ffr%2Fstatistiques%2F3676614%3Fsommaire%3D3696937&usg=AOvVaw2D1o7uRWcHfM1r31g3q1yw 현재 프랑스 영토 내 살아가는 이주민 중 46 %는 아프리카, 33 %가 스페인과 이태리를 포함한 유럽, 아시아 14 %,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가 6 %로 집계되고있습니다. [2] 참조링크 : https://www.lci.fr/population/immigration-inquiete-les-francais-qui-sont-63-a-penser-qu-il-y-a-trop-d-etrangers-en-france-2132387.html



참고문헌


통합유럽연구회, 박물관 미술관에서 보는 유럽사, 책과함께, 2019

Luc Gruson, Un musée peut-il changer les représentations sur l’immigration ?,in Hommes & migrations, Paris,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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