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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나타나는 면을 기다리는 의식에 관하여

4월 7 업데이트됨

스크린, 나타나는 면을 기다리는 의식에 관하여

w.정지숙



서론. 로딩 중인 화면은 왜 우리를 화나게 할까?

우리 모두는, 적어도 인터넷으로 자주 무언가를 보는 사람들에게 있어, 다음과 같은 이미지에 대한 경험은 비일비재하리라 믿는다.



사용하는 웹사이트의 UI(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소위 “로딩 중”이라는 기표는 곧 나타날 이미지를 위한 과정이 처리 중에 있음을 나타내는 지시 기호에 해당한다. 통상, 이 기표는 여러 정도로 나누어진 무채색의 도형들이 원을 따라 쭉 늘어서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운동성을 띄고 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도형들의 행렬이 표현하는 바는 분명하다. “요청하신 과정이 처리 중이오니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기표가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왜 한숨을 내쉬게 될까? 어쩌면 희한하게도 돌아가는 무채색상표가 화면 위에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기다리던 이미지 대신, 우연찮게도, 다른 이미지가 나타났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표 “로딩 중”은 나타나는 면 위에 투사된 우리의 기대를 배반한다. 즉, 화면 위에 특정한 이미지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우리의 의식과, 실제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 사이의 불 일치가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오로지 나타나는 면으로서 화면이 가지는 특수성에 기인한다. 즉, 화면이라는 표면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미지는 표면에 그려진 것이 아닌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 된다. 삶이 펼쳐지는 공간이 살아가는 형상을 결정하듯이, 공간과 공간의 성질은 오늘날 그를 매개로 삼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성질을 결정짓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미지가 매개로 삼아 펼쳐지는 화면의 특성 또한, 이미지의 오늘날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 이미지 그 자체가 어떠한 객체적 특수성을 가지고 우리의 의식과 관계 맺고 있는 지를 살펴본다면, 로딩 중인 화면이 왜 우리를 화나게 하는지 그 타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와 같은 이해를 토대로, 우리는 독자적인 표현물로서 무엇에 대한 의식의 대상이 되는 이미지와 그렇지 않은 이미지에 대한 논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 후, 그리는 면으로서의 화면과 나타나는 면으로서의 화면, 즉 화폭과 스크린의 차이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상에 투사하는 의식의 지향성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칼럼을 마치고자 한다.


본론 1. 이미지란 무엇인가?

원본의 복제에서 독자적인 차원을 지닌 객체로이미지는 불가피하게 어떤 대상을 가지는 존재일까? 원본과 이미지의 존재론적인 관계를 탐구한 플라톤에 의하면, 이미지는 언제나 그 자신이 아닌 무엇인가를 가리킨다. 즉 이미지의 현존은 이미지가 가리키는 무엇인가가 여기에 부재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미지는 독자적으로 실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그에 의하면 이미지는 어떤 존재의 소산이 된다. 그러나, 이미지는 플라톤이 탐구하고자 하는 어떤 추상적인 본원을 가지는 객체로 소급되지 않는다. 이미지는 어떤 존재에 대한 논리적인 복제가 아니라 어떤 대상에 대한 해석의 결과로서, 감각적인 실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이미지에 대한 논의는 대상과 결부된 이미지, 즉 재현으로서의 이미지에 대한 기호학적인 논의로 발전한다. 이미지를 참조하는 대상을 재현한 결과(기표)로서, 참조하여 재현하는 행위가 말하고자 하는 바(기의) 와 참조 대상 간의 삼 항 구조 속에 놓을 때, 우리는 이미지가 가지는 메시지와 전달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즉, 기호로서의 이미지와 이미지를 읽는 법칙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된다. 언어학에서, 기호들은 반드시 법칙을 가지며 법칙은 기호를 해석하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기호는 상호 소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기호를 만들 때에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법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 고속 도로 위 낙석 주의 »를 표기하는 알림판은 반드시 사회적으로 통용 가능한 해석 법칙에 따라 기표를 만들어 내야 한다. 알림판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은 고속 도로를 지나는 모두에게 동일한 결과를 산출해내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이미지가 이와 같은 의무를 짊어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예술 작품으로서의 이미지는 동일한 해석 결과를 산출해야 할 의무가 없다. 이미지는 이때 읽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느끼는 것이 된다. 즉, 동일한 해석 결과를 만드는 법칙을 따라야 할 의무가 없는 이미지는 주관적인 방식의 소통을 통해 수 없이 다양한 결과를 낳는다.


이와 같은 종류의 이미지는 참조 대상과의 관계에서도 느슨함을 획득하게 된다. 즉, 이미지는 참조하는 대상을 반드시 닮을 필요가 없게 된다. 혹은, 이미지는 동시에 여러 가지의 참조 대상을 가지거나, 심지어 참조 대상을 가져야 하는 기호학적 의무에서 벗어나게 된다. 무엇인가에 대한 이미지로서 이미지는, 참조 대상에 대한 의존적인 관계로 인해 독자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만약에 이미지가 참조 대상, 혹은 원본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미지는 그 자체로 원본이 된다. 즉, 이미지는 독자적인 실존성을 가지게 된다.


본론 2. 화면이란 무엇인가?

그리는 면에서 나타나는 면으로 화면의 사전적 정의를 잠시 살펴보자. 크게, 畵面(화면)에는 세 가지 정의가 있다. 그림 따위를 그린 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따위에서 그림이나 영상이 나타나는 면, 혹은 필름, 인화지 따위에 촬영된 영상이나 사상.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들을 이 세 가지 화면의 양상에 따라 나눠보면, 도화지에 그린 그림 혹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 디지털 이미지들, 그리고 촬영 필름으로 나눠진다. 기술 발전의 양상과 함께 화면은 물감을 칠할 수 있는 화폭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닿은 자리를 화학적인 방법으로 드러내는 인화지로, 그리고 변복조된 전기 신호가 패널을 통해 가시적인 정보로 드러나는 공간의 실질적인 규모가 된다.


세 번째 화면, 즉 스크린의 도래는 아마도 첫 번째 역사적 화면 장치, 음극선관(CRT)가 나타나기도 이전에 미술사 내에서 일어난 패러다임적 전환과 어떤 관련을 맺는 것처럼 보인다. 브루노 아스(Bruno Hass)는 19세기 초반부터 나타나는 화면의 성질적 변환에 주목한다.



The stages of Life, Caspar David Fredrich, 1835, Huile sur toile, 72 X 94 cm

Museum der bildenden Kunste, Leipzig

그는 프리드리히의 작품과 17세기 바로크 양식 화가 클로드 로랭 사이에 그들을 약분할 수 없게 하는 분기점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Port de mer au soleil couchant, Claud Lorrain, 1639, Huile sur toile, 100 X 130 cm

Musée du Louvre


그에 따르면 로랭의 화폭이 가지는 성질과, 프리드리히의 화폭이 가지는 성질 간의 차이란 다음과 같다. 로랭의 이미지 공간에는 첫 번째로, 노을이 지는 정경을 만들어내는 물감들의 화합을 만들어내는 갈색의 배경이 캔버스 위에 깔린다. 말하자면, 로랭의 그림은 갈색과 하늘색의 반정합적 조화 사이로 드문 드문 빛나는 희끄무리한 색채들이 나타내는 찰나의 정경이고, 관람객이 그 속으로 편안하게 뛰어들 수 있게끔 심도를 확실하게 준 그림이다. 반면, 프리드리히의 이미지 공간에는 이와 같은 배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배들의 크기의 다양성과 지평선이 주는 심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지평선 너머의 공간을 상상할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림 뒤편의 공간이 닫혀있으므로 지평선 너머로 의식을 투사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해석(혹은 미학적 경험)의 불가능성과 가능성을 결정짓는 것은 구조, 즉 그림이 펼쳐지는 공간인 화면의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구조적인 성질이며, 프리드리히의 경우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미지가 판화적 면, 스크린에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때 스크린은 판화(gravure)적으로 물질(matrice)에 새겨진 상이 나타나는 (재생산되는) 면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미지가 나타나기 전의 스크린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으로 존재하게 된다.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이미지로서의 그림이 등장하면서, 관람객은 더 이상 그림 내로 뛰어 들 수 없게 된다. 이미지라는 사건이 나타나는 장소로서의 화면은 관람객이 차지할 수 있는 가상적인 위치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론 3. 의식이란 무엇인가?

대상의 이미지에 대한 의식에서 이미지에 대한 의식으로 이미지의 독자적인 실존성에 대한 논의를 토대로, 화면 위에서 사건화되는 이미지와 후설의 지향성 의식 개념을 간략하게 연결지음으로써 이미지와 공간, 그리고 그들을 향하는 의식에 대한 칼럼을 마치고자 한다. 후설에 따르면, 모든 의식은 무엇에 대한 의식이다. 우리는 그것을 의식의 지향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저 지향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며, 참된 대상이란 존재하는 대상이다. 즉 우리는 어떠한 것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무엇인가를 향해 의식을 기울일 수 있지만,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대상이 모두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둥근 사각형이나, 붕새와 같은 대상들이 « 그저 » 지향적인 대상에 해당한다.


참조 대상(모티프)와 느슨한 관계를 맺는 이미지들은 무엇에 대한 이미지가 아닌 그 자체로서의 독자적인 실존성을 가지게 된다는 점을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즉, 원본과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이미지는 재현적 질서 하에 나타나는 표상(지각에 의해 의식에 나타나는 대상의 이미지)이 보다는 하나의 개별적인 사건에 가깝다. 즉 이미지는 그려진 것이 아닌 나타나는 것이 된다.


이미지가 사건으로 화면에 나타남에 따라, 이미지를 해석하는 과정에도 반드시 변화가 찾아 올 수 밖에 없다. 말하자면, 로랭의 화폭을 보면서 수평선 너머 그림 뒤에 위치한 노을 지는 바닷가라는 어떤 추상적인 본원을 향해 의식을 투사하는 행위와, 프리드리히의 스크린 위에 나타난 바닷가로 향하는 배들과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지켜보는 행위는 사물에 대한 의식의 지향성에게 있어 다른 가정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기표 « 로딩 중 »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이 이미지는 이제 화면 위에 나타나는 사건이 된다. 에릭 보네(éric bonnet)에 따르면 스크린이람 « 기다림, 기대 » 혹은 « 패임»에 해당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는 텅 빈 화면은, 패여 있는 공간으로서, 무엇인가가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기를 우리에게 제시하는 공간이다. 이윽고 나타나는 이미지란 이미 던져진 우리의 의식, 혹은 기대에 걸 맞는 어떠한 사건이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사건이 될 것이다. 열중해서 지켜보던 이미지가 펼쳐지는 공간에, 갑작스럽게, 전혀 기대하지 않는 사건이 등장한다면, 우리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로딩 중인 이미지는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 사건으로서, 그 언제 나타나도 여전히 우리에게 괴로움을 선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참고문헌


Agnès Felten, « Éric Bonnet, dir., Esthétiques de l’écran, lieux de l’image », Questions de communication, 24 | 2013, 249-252.


Bruno Haas* maitre de conférences en philosophie de l’art à l’université Paris 1 Panthéon-Sorbonne. Ses domaines de recherche portent notamment sur la théorie de l’image et la philosophie de l’esprit. Cet article a référé sa conférence.


Définition sur l’écran* le dictionnaire coréen de Naver


Définition sur les 3 catégories de l’écran & Gravure réfère Wikipédia. Mot de recherche : gravure, écran de l’ordinateur, CRT, screenprinting, print.





이미지출처


Image 1

https://www.ux-republic.com/theorie-de-gestalt-psychologie-de-forme/animation-loading-loi-gestalt/


Image 2

The stages of Life, Caspar David Fredrich, 1835, Huile sur toile, 72 X 94 cm ; Museum der bildenden Kunste, Leipzig

https://fr.wikipedia.org/wiki/Les_%C3%82ges_de_la_vie#/media/Fichier:Caspar_David_Friedrich_013.jpg


image 3

Port de mer au soleil couchant, Claud Lorrain, 1639, Huile sur toile, 100 X 130 cm ; Musée du Louvre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0087_Louvre_Gellee_port_au_soleil_couchant-_INV4715_rw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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