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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 바그(Nouvelle Vague), 그 새로운 파도 2부 : 누벨 바그의 주역들
w. Jehyun LEE 이제현
누벨 바그의 시작을 알리는 프랑수아 트뤼포(François Truffaut)의 '400번의 구타' (1959)는 촬영 기법에 있어 등장 인물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찍는 연출을 통해 작품 속 인물이 관객에게 고백하는 듯한 느낌을 주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이끌어낸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이는 오늘날 프랑스 영화에서 여전히 통용되는 기법으로 관객이 작품에 무의식적으로 몰입하여 현실을 잊게 만들기 보다 스크린 속 대상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켜 현실을 대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데, 이를 영화 용어로 '소격 효과'라고 부른다.
이 소격 효과는 누벨 바그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인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의 작품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고다르는 '400번의 구타'의 개봉과 같은 해인 1959년에 자신의 첫 장편 영화 '네 멋 대로 해라'를 발표하는데, 이 작품은 1960년 전후 유럽의 청춘 문화를 상징하는 일종의 아이콘과도 같은 작품이다. 특히, 제작 과정에서의 즉흥 연출, 현장 로케, 점프 컷, 핸드 헬드 촬영 등의 방식은 기존의 틀을 깨는 전복적 시도였으며, 주제적 측면에서도 그동안 다루지 않던 권태, 소통 불가능, 허무주의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전후 급격한 현대화에 대한 부적응으로 방황하는 청년들의 초상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고다르는 관객을 영화에 몰입시켜 현실을 잊게 하는 영화는 올바른 영화가 아니며, 그런 영화는 부르주아적 가치에만 부합하는 영화라고 비판하였고,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그의 작품들 속에서 여러 차례 소격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1959)에 사용된 점프 컷.

같은 작품에 사용된 소격 효과.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와 더불어 누벨 바그를 대표하는 감독인 알랭 레네(Alain Resnais)의 '히로시마 내 사랑' 역시 1959년에 개봉한 작품 중 하나이다.알랭 레네는 시간에 대하여 끊임없이 탐구하고, 작품 속에서 이를 실험한 감독으로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의 기억, 기억과 망각, 실제와 상상 사이를 오가는 시간 구조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병사를 사랑한 죄로 극심한 고통과 절망을 체험한 프랑스인 여주인공과 히로시마 원폭투하 때 눈앞에서 가족들이 쓰러지는 것을 본 일본인 남주인공의 이야기로, 두 인물은 사랑을 나누지만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내면의 상처로 고통을 겪는다. 이러한 이중적 구조는 성별과 국적에 관계없이 전쟁으로 파괴된 인간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누벨 바그의 유일한 여성 영화인인 아녜스 바르다(Angès Varda)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5),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행복'(1965) 등의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기존의 영화적 관습을 거부하고 권위와 편견에 대항함에도 불구하고 여성 문제에서 만큼은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던 누벨 바그의 한계를 극복해내기도 하였다. 또한, 나이지리아에서의 군복무를 계기로 흑인 문화와 백인 문화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자 했던 누벨 바그 영화인인 장 루슈(Jean Rouch)는 민족지학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작품들을 제작하였는데, 1955년 개봉한 '미친 추장들'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기록 영화로, 식민지배를 통해 그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은 유럽적, 산업적, 도시적 요소들을 보여주며 아프리카인들의 행동이 오히려 이러한 것들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장 루슈는 ‘시네마 베리테(Cinéma Vérité)’라는 용어로 자신의 영화를 정의하였는데, ‘영화는 곧 진실’이라는 이 개념은 카메라 렌즈가 가지는 절대적인 객관성을 통하여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함을 뜻한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동시 녹음이 가능한 카메라를 처음으로 사용한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 장르의 발전을 가져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장 루슈의 '미친 추장들'(1955)의 한 장면.
프랑스의 영화 평론가인 장 피에르 장콜라(Jean-Pierre Jeancolas)는 영화의 역사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 이 시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 그들은 영화 협회가 요구하는 최소 기술팀으로부터 영화를 벗어나게 했다.
· 그들은 길·집·방·자연에서 영화를 촬영하면서 행정적이고 재정적인 어려움으로부터 영화를 벗어나게 했다.
· 그들은 예술·윤리·생활과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 국가의 영예 등과 관련된 야릇한 개념을 가진 수많은 검열로부터 영화를 벗어나게 했다.
· 그들은 영화 기획에 ‘구세대 사람들의’ 지나친 주장으로부터 영화를 벗어나게 했다.
· 그들은 또한 영화를 스타 숭배와 기술적인 특성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
이처럼 누벨 바그 영화인들은 기성 영화에서 볼 수 없던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시도와 당대 사회상을 작품에 여실히 담아내고자 했던 의지로 영화라는 장르를 하나의 대중예술로 자리잡게 만든 주역들이었다. 다음 화에서는 누벨 바그 시기 이후 프랑스 영화사(史)의 전개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누벨 바그 경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김호영, 『프랑스 영화의 이해』, 연극과 인간, 2003.
장 피에르 장콜라, 『프랑스 영화사』, 김혜련 옮김, 동문선, 2003.
김남연, 윤학로,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통: 프랑스의 누벨바그」, 프랑스문화예술연구, 2007.
이용주, 「고다르의 영화적 비전과 여정」, 프랑스문화예술연구, 2010.
이정하, 「고다르의 초기 몽타주 개념 연구」, 한국프랑스학논집, 2017.
이미지 출처
프랑수아 트뤼포, '400번의 구타', 1959.
장 뤽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 1959.
장 루슈, '미친 추장들', 1955.